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 바라보기 - 사집반 도현

가람지기 | 2020.06.29 21:04 | 조회 814







 



 

심장이 두근두근, 다리가 후덜후덜

 

운문사 와서 처음 많은 대중스님들 앞에서 새벽예불 선창을 해야 하는 석차례 시간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떨렸습니다.

 

어떻게 예불 선창을 했는지? 목소리를 너무 크게 한 것은 아닌지? 음은 맞았는지? 새벽 예불을 하고 나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렇게 떨지?

이제껏 이렇게 많은 대중스님들 앞에서 선창을 해 보지 않아서인가?

너무 잘하려 해서인가?

자신이 없어서인가?

이제껏 예불은 많이 드려오지 않았던가?’

 

조석예불을 드린 지는 불자가 되고 난 후, 10여년이 되었고 예불문(禮佛文)이 좋아 부처님께 귀의하고 불자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석예불을 드려 왔었습니다.

운문사 오기 전 행자시절에도, 사미니계 받고나서도 예불 집전하면서 조석예불을 드려 왔었습니다. 그래서 조석예불이라면 누워서 떡먹기까지는 아니어도 쉽게 생각해 왔고, 늘 하던 대로 하면 되지 하고 편안하게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석차례 시간이 되니 이제껏 이런 떨림이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석 차례 시간만 되면 계속 떨렸습니다.

이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했습니다.

 

이런 저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답답해서 제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이러한 바탕에는 평소 하는 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에 충분한 연습을 하지 않았고, 원래의 나보다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저의 마음 밑바탕에 특별한 노력 없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만심(自慢心)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스로를 치켜세우려는 마음이 있었다니...’ 내 모습에 너무 놀랐고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막막하고 예불 때 떨렸던 것처럼 가슴이 떨렸고, 내 안의 자만심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만심이라는 무명(無明)으로 인해 나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없었고, 자만심이 내 인생의 걸림돌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제 삶을 뒤돌아보면 자만심으로 인해 좌절을 겪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 원하는 학교 지원이 어긋나자 안이하게 생각해 쉽게 합격하리라 생각했던 학교 입학시험에 불합격 한 것부터, 20대 중반에 불교를 접하고도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뒤늦게 출가한 것 등을 짚어보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 모습을 직면하는 것을 회피했습니다.

내안의 자만심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제 삶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제 자신을 바로 보는 것을 방해했음을 알겠습니다.

 

구사론에 의하면 만()은 자기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고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즉 남과 나를 비교하여 뛰어남과 열등함의 차별을 짓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高擧)하는 마음 작용으로 굳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여 내가 뛰어나다또는 내가 그와 동등하다등의 경멸(輕蔑)하거나 자부(自負)하는 마음을 일으켜 자신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만(我慢)은 오취온(五取蘊)을 나() 또는 내 것(我所)이라고 집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잘난 체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라 해 놓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행하는 모든 것이 무상하고, 모든 법이 실체가 없다고 했는데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서 나를 내세우려하고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참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특별하게 남들보다 잘 하는 것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더 내세우려하고, 인정(認定)받으려는 것이 제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직면하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제 자신을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보니 지금의 이런 제 모습 또한,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인정하고 바로 보기 할 때가 제 수행의 시작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온갖 물질문명이 발달한 지금, 명예, , 권력 등을 버리고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살고자 출가해 노력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낼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부처님 말씀대로 이미 불성을 가지고 있고, 있는 그대로가 완전한 존재임을 깨달아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승가에 의지하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로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운문사에 있는 지금이 소중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이와 맞추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대중생활을 통해 알지 못했던 저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고, 여럿이 함께 살려면 제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정해진 규율에 따라 생활하므로 저를 내려놓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운문사는 겸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항상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에 감사하면서 제 인생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하며, 과거 여러 생으로부터 지금까지 입과 몸과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대중스님들과 함께하는 이 소중한 기회에 대중스님을 통해서 원융(圓融)하게 수행 할 수 있길 간망(懇望)합니다.

대중스님들 잘 지켜봐 주십시요!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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