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인아산 타파 - 사교반 범견

가람지기 | 2020.06.29 21:05 | 조회 248



안녕하십니까. <인아산 타파>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범견입니다.

 

제가 행자생활을 마치고 직지사 수계산림에 갔을 때, 행자 교수사셨던 이 자리에 계신 존경하는 율주스님께서 법문을 해주신 내용을 가끔 생각합니다.

 

타파인아산(打破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 다들 잘 알고 있는 말이지요?

나다' '너다' 하는 아만심을 꺾어 없애고 대중이 화합하는 공덕의 숲을 키워나가자

라는 산림을 설명하신 법문입니다.

혹시 넘사벽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국어사전에는 아마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것은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같은 존재. 즉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

또는 따라잡을 수 없는 특정한 대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저에게 있어 넘사벽은 바로 나. 나 자신이었습니다.

 

출가 전 가지고 있던 핸드폰의 메인 화면에는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용감한 문구를 내걸고 살았고, 고집스런 아상에 사로잡혀 잡히지도 않는 행복을 쫒으며, 만족스럽지 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무척 다행스럽게도 전생의 한 조각 인연으로 불법을 만나고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는 일을 수행이자 업으로 삼고 지냈습니다.

늘 부처님께 감사하고 환희심으로 가득찼지만, 부처님 앞에서 엎드려 절하는 중에도 불쑥불쑥 아상이란 것이 고개를 들어서 바른 견해를 방해했습니다.

결국 저는 나 자신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자리에서 깨어 부수어야할 인아산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요?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을 머릿속에 깊이 새겨서 살아가는데 이것이 쌓여서 습관이 되고 습관이 굳어져서 업이 되고 그 업이 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상이 바로 자아이고, 자기존재감이고 아집이 됩니다.

남과 구분 짓는 나라는 생각과 집착은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면서 대상을 바르게 관찰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과 분노와 고통을 낳습니다.

늘 이기적인 마음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나와 상대방의 장벽을 더욱 높게 만들뿐입니다.

 

운문사 행자시절에는 고양이 보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하심 행자였고 하루가 너무나도 바쁘고 고단하게 지나가버려서 사실 나라는 존재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강원에 입학하고 치문. 사집을 지나면서 은사스님의 법문을 다시금 떠올릴 때가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싫은 감정이 있던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큰일이 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어쩜 그럴수가 있어?”

하지만 내가 평소 호감이 있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럴수도있지~~”하며 무한한 자비심을 내며 작은 일처럼 생각하기도합니다.

또 상황마다 분별하고 잘잘못을 따지고 내 생각이 옳다며 귀를 막고 제 목소리만 내는 이기적 행동을 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슬그머니 고개 드는 아상의 작용이었습니다.

평소엔 잘하다가도 누군가의 앞에만 나서면 긴장을 해서 일순간 까마득해 지는 것도 상 때문이고, 경책을 받을 땐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미루거나 눈치를 보는 것도 다 이 아상으로 인함이었습니다.

늘 긴장감으로 몸은 굳어가고 염증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니 육체적인 고통이 따랐고. 우울감과 무기력으로 몸과 마음에 모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상은 이렇게 단단한 뿌리로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버리고 비우고자 노력하는 수행자에게

탐진치 삼독을 매순간 일으키게 하며 초심자의 수행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고집하는 아상이 인이 되고, 너라는 인상이 연이 되어, 우리는 늘 아웅다웅 중생심으로 업을 짓습니다. 이것은 결국 생사윤회에 얽매이게 되는 과를 낳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는 생각 하나가 이렇게 인연업과를 일으킨다니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부서지고 깨지는 고통의 과정 속에서 단단해지는 것이 치열한 수행의 과정이라지만, 나와

상의 크기가 비슷한 도반들을 만나고, 숨을 곳 없는 운문도량에 사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상()이란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若菩薩 有我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고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 是諸衆生 無復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無法相 亦無非法相이면 得如是 無量福德이라

중생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으며, 법이라는 상도 없고, 법이 아니라는 상도 없으면 한없는 복덕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였고

<원각경>에서는 중생이 사대를 오인하여 내 몸인줄 알고, 내 마음인줄 아는 어리석음을 일으킨다고 하시며 환이 환인줄 알고, 상을 깨뜨려 무명을 벗어나면 곧 원각의 깨달음. 누구나 깨끗한 본래의 자기부처를 찾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렇게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인아산의 탓으로 돌려보았는데요.

그렇다면 높고 단단한 인아산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겸손과 하심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낮추는 것을 의미하고, 남보다 아래에서 모두를 부처님처럼 받들며 살겠다는 자세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하심입니다.

 

치문에 들어서자마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들이 있지요.

-묵언하세요. 차수하세요, 줄 맞추세요, 이렇게 합니다, 이런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힘들었던 습의는 결국 하심이었습니다.

모진 말에 상처받기도 하고 수직적인 구조의 답답함.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받아들이느라

나름 힘이 들었습니다.

하심은 시시각각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별과 망상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쉬며 돌이켜보는 것.

인욕바라밀입니다.

이렇게 하심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남을 원망하던 마음의 화살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씩 일어날 때가 있는데 그때 바로 그 높고 단단한 인아산에 금이 가면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치문의 습의 또한 대중이 함께 지내기 위한 규칙과 위의를 익히는 것으로 상..하좌 모두 하심의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여 승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아산이 무너지게 되면 불편했던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가 편안하면 나를 대하는 모든 이들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부처님으로 보이고 가슴속에 자비로움이 가득해지는 것.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펼쳐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은사스님께서 말씀하신 화합하여 평화로운 공덕의 숲을 이루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따르는 우리 수행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아상을 버리고 자비심과 지혜를 발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가 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아 늘 부족함이 많은 자신을 참회하고 다시 서원을 세우며 재발심하는 기회가 되어서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야운스님의 게송을 끝으로 이 자리를 마치려고 합니다.

人我山崩處(인아산붕처)無爲道自成(무위도자성)하니

凡有下心者(범유하심자)萬福自歸依(만복자귀의)니라

너와 나라는 상이 무너진 곳에 위 없는 도가 스스로 이루어지고

모든 것에 두루 하심을 하는 자는 온갖 복이 저절로 돌아오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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