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무득이 무득을 말하다. - 사교반 무득

가람지기 | 2020.08.01 10:21 | 조회 197



해마다 운문사의 첫 강의가 시작 될 때면 모든 학과목 교수님께선 모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십니다.

스님, 스님은 그 법명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 하셨나요?

교수님 질문에 제 대답은 매 학년마다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1학년 치문 때는, 무득이 사실 무슨 뜻인지 잘모르겠습니다 였고,

2학년 사집 때는, 있는바 얻을 것이 없다는 뜻 같습니다 였습니다.


이제 3학년 사교가 됐습니다.

어떻게 대답 했을까요?

미숙 하지만, 아는 만큼 그 대답을 지금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이번 차례법문의 주제를 무득 으로 잡은 사교 반 무득 입니다.

무득 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무나 공과 함께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막상 뜻을 말하라고 하면 선뜻 설명이 어려운 말입니다.

불교 대 사림에 무득이란 인연에 의해 생하고, 멸하고 변화하는 모든 존재는 독립된 자성이 없기 때문에 자성적 실체를 얻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일체 모든 법이 자성적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 대상에 대한 일체의 집착을 떠난 구경의 자유로운 경지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무소득 이라고도 합니다.


사전적 의미를 읽고 또 읽다보니 그 뜻은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자니 참 어려운 문제 였습니다.

마침, 교수님께서 낱낱이 교정을 봐주시면서, 요즘 배우고 있는 금강경의 즉비 논리에 대해 설명 해주시면서, 어디 까지가 무득이고, 무엇을 무득이라 정의할수 있는지 또,현상계의 무득과 절대진리인 무루법에 도달할수 있는 무득에 대해 생각 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즉비논리의 A는 곧 A가 아니니, 이 이름이 A일 뿐이다. 를 응용해 지금의 나를 예로 들어 봤습니다.


은사스님께서 무득 즉, 일체의 모든 집착을 떠나서 자유로운 경지가 되길 바라며 지어주신 그 절대진리의 이름을 받고,운문사에 첫발을 내딛었던 나 무득과,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자신에 번뇌로워 매 순간 순간을 울고, 웃는 지금의 현상계의 나 무득,

아 차 하는 순간에 이미 습관적인 게으름으로 인해 놓치고, 일어난 마음에 괴롭고 번뇌로워 하다가 참회하며 잠을 설치고, 도량석 목탁 소리에 첫 새벽을 맞이할 땐,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해 보고, 또 좌절하고, 열 두 번 쯤 주변정리도 해가면서 스스로 에게 비상구를 만들어 주는 나,또 다른 현상계의 무득.

그럼에도 내 꼴을 봐주고 있는 도반들을 보면서 다시 일어서자 달라지리라, 나아지리라 성숙해 지리라 다짐 하며, 부처님 절대 진리인 무루법에 필경 도달할수 있길 간절히 발원하는 나 무득,

어느것이 진짜 나이고, 무엇이 무득 일까요??


현상계와 절대 진리가 둘이 아닌 이치를 체득할 때 이 물음에 대한 온전한 답을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 막 으로, 가산불교 대사림에선 무득을 이렇게 정리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괴로움을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에 안주하는 것인데, 괴로움의 원인이 바로 집착에 있는 것이기에 모든 집착을 떠난 무득의 경지가 바로 니르바나의 상락아정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합니다.

부족 하지만, 이 법문을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서 부디, 매 순간이 무득의 경지를 맛보는 늘 좋은날 즐거운 날 되 시길 바라며 부족한 법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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