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치문반의 겨울을 보내며-치문반 서우스님

가람지기 | 2021.01.02 08:04 | 조회 94

치문반의 겨울을 보내며

서우/사미니과

 

이 차례법문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회주스님과 어른 스님과 상반 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날부터 일상의 의욕이 떨어지고 감정이 무뎌지고 소통의 어려움을 느껴 왔었습니다. 불편함은 느꼈지만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탓에 좀 지나면 괜찮겠지 넘겼습니다. 하지만 법문 준비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편했던 도반들이 불편해지고 섞이지 못하고 즐겁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왁작지껄한 일상의 대화들이 재미없고 공양물을 받아먹으며 맛이 있네, 없네, 좋아하네, 안 좋아하네, 이러쿵저러쿵. 도반들의 모습을 보며 업이 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지고 창피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위산대원선사경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끽료코 취두 훤훤하야 단설인간잡화하나니

먹기를 마치고는 머리를 맞대고 시끌시끌해서 다만 말하기를 인간 세상에 잡담만 설하니

 

이 구절을 공부하면서 도반들과 웃고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단월들의 상주물을 생각 없이 먹고 써버리는 승려들의 모습을 지적하며 그러지 말기를 당부하셨던 대목이었는데 곧 저희들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생각 없이 내뱉었던 무수한 말과 감정들, 생각들이 갑자기 몰려오며

얼굴이 붉어지고 그 후부터는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나도 그렇구나도반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었습니다. 도반들과 내 안의 업들이 아우성치고 있는 가운데 점점 말하기가 힘들어지고 눈물이 났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도반들도 나도…….

말의 무게를 알지 못하고 너무 쉽게 말을 했구나.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는데도 아직도 이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가를 했으면 생각도 행동도 속인과 달라야 하고 실제로 달라졌다 생각했는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아직도 속인의 습을 버리지 못했고 무명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었습니다. 수행은 무명타파라 했는데…….

 

지난여름의 한 도반이 생각납니다. 그 도반은 쉴 새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운문사의 일상 속에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며 절박한 마음을 내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런 시간이 어디 있냐며 가볍게 넘겼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돌아볼 시간을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단 뜻이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점검할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수업시간에 강사스님께서 화살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후레쉬를 켜 보이시며 회광반조를 설명하시고 부처님의 계··혜의 기본과 탐진치 3독에 대해 설명을 하시며 대중생활은 신구의 3업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잘 살 수 있다. 그러니 입을 3번 다물어라라고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대방으로 돌아오면 입이 바빠지고 먹고 떠들고 입으로 3번 더 떠들고 떠들어 배고프니 또 먹고. 우리의 업은 그렇게 뛰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가볍게 넘겼던 도반의 고민이 내 고민이 되어 소통의 어려움과 감정의 어려움을 겪고 이렇게 괴로워하는 시간을 맞게 될 것을……. 그 도반이 생각납니다. 크기가 다른 감자들이 모여 이리 쓸리고 저리 쓸려 껍질을 까 나가던 중 한 감자가 튕겨져 나갔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감자……. 빈자리가 큽니다.

 

치문은 치문으로서 해야 할 검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통해 알아차리고 자각함으로써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처음 만나 같이 자고 먹고 울력하고 공부하고 24시간을 같이 지내며 서로 다른 습을 하나로 바꿔가고 대중과 하나가 되고 대중을 배워나가는 좌충우돌의 시간.

 

부처님의 계. . 혜를 배우고 탐진치를 없애며 6바라밀의 행을 실천해 나가는 강원의 교육 속에 아랫반을 맞아야 하는 상반으로서의 위의 노란색 신호등은 잠시 멈추고 뒤로 돌아가라는 신호라면 저희의 노란 발참지는 잠시 멈추고 자신을 점검하라는 상반스님들의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변혁기에 있는 치문반. 좌충우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치문반. 그래서 치문인가 봅니다.

 

코로나로 인해 늦은 개학으로 운문사 치문이 되어 바삐 달렸습니다. 습의로 시작해 습의로 마무리 하는 일상들. 늦은 입학으로 생략된 일정들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더욱 긴장 되었습니다. 틈 없이 짜여진 일정들. 걷는 법, 말하는 법, 생각하고 행동하고 잠자고 씻고 하는 모든 일상들을 다시 습의 받으며 부지런히 나아갑니다. 아니 검은 물 들여갑니다.

 

도량석을 하고 쇳송을 하고 법고를 치고 스킬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들. 이리저리 뛰어다녀 양말에 구멍이 났는지도 모르고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한자를 모르고 출가하면 힘들다는 말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막상 책을 받고 보니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한글 하나 없는 책. 짧은 한자 실력 때문에 한자들로 가득한 치문책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걱정거리였습니다. 한자 찾는 시간이 길어지고 쓰기도 힘들고 해석은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보석같은 내용은 강사스님의 해석을 통해 쓰기 바쁘고 그 깊은 뜻은 어느새 노트에만 남아 저와 거리가 멀어집니다. 분명히 수업시간에는 마음을 울리고 공감했는데...

 

짧았던 봄이 지나고 습하고 더운 여름 어느 해보다 가뭄이 심해 더위를 피해 뛰어 들었던 이목소는 깊이가 얕아 발만 적시고 아쉬운 여름을 보내고 감따기와 낙엽을 쓸고 지나간 가을. 눈 깜짝할 사이 겨울에 접어들어 부족했던 저희 치문반 위의를 바로 잡기 위해 오늘도 입승스님과 상반스님들은 저희들 때문에 잠 못 이룹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시죠. 저희는 속이 탑니다.

 

하지만 운문사에 들어와 잘 자고 잘 먹고 훌륭한 강사스님께 공부도 배우고 행복합니다. 성급하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며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회주스님께서 일구어 만드신 사랑이 가득한 운문사. 선배님들 발자취를 따라서 느리고 빠름을 탓하지 않고 있는 각자의 본연의 모습으로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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