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불교의 재齋와 유교의 제祭-사교반 무공스님

가람지기 | 2021.10.11 20:14 | 조회 698

불교의 재와 유교의 제

 

무공/사교과

 

멀리 보이는 호거산 자락은 여전히 푸르고 푸른데 절기는 때를 맞추어 찾아오고 과일들과 곡식들은 영글어 가을이 깊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청명하고 풍요로운 가을에 불교의 재와 유교의 제에 대해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무공입니다.

 

방학 동안 차례법문 주제로 고민하던 차에 저희 절 공지사항 란에 추석 재사라고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 재사를 왜 아이 자로 적어놓으셨지? 어이가 아닌가?” 하며

어이로 바꾸어 놓고는 은사 스님께 스님! 추석 재사에 재자가 틀려서 수정해놓았습니다.” 라고 하니, 은사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무공아 절집에서는 어이 제자를 쓰지 않고 아이 재자를 쓴단다.” 라고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제此際에 불교 재와 유교 제에 대한 주제로 차례법문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불교의 재는 한문으로 재계할 재입니다. 재계할 재를 쓰는 낯익은 단어는 천도재, 사십구재, 우란분재,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이 있습니다. 재는 범어 우포사다(Uposadha)를 번역한 말인데 본래의 뜻은 신··삼업을 정돈하고 가지런히 하여 악업을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불교 이전에도 고대 바라문 교도들은 신심을 단련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일정한 날에 사원에 모여 단식과 목욕재계를 하며 재의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한때에 가란타 장자의 동산에 최초로 죽림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공양한 빔비사라왕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일 스님들이 육재일에 한 처소에 모여 있고 또 부처님께서 그곳에서 설법을 해주신다면 내가 대중을 모아 법을 듣고 공양을 올려서 공덕을 지을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고는 부처님께 청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늘부터 병고자 스님들은 제외하고 육재일마다 처소에 모이면 내가 설법을 해주겠노라.” 하시며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때 빔비사라왕이 스님들의 수행을 돕기 위하여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린 것을 재식齋食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십송율에 보면 인도에서는 한 달 중에 육재일 날은 몸을 조심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재계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음력 8, 14, 15, 23, 29, 30일로 이날에는 사천왕과 팔부신장이 천하를 돌아다니며 사람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귀신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할 틈을 엿보는 날이므로 행동을 조심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계를 잘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승가에서도 이것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육재일을 살펴보면 부처님 시대에 불자들의 신행생활이 얼마나 철저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불자들은 단순히 부처님을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출가수행자들의 수행을 직접 체험케 하는 제도를 두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육재일은 원래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의 본을 받아 정진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에 재일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불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시대 때 국가적으로 팔관재계를 시행하여 계목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름과 그믐에는 자신이 계를 잘 지키고 있는가를 반성하는 포살布薩 의식을 했습니다. 잘 아시다 시피 포살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출가자들이 모여 지난 보름 동안의 행동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의식입니다. 특히 불자들이 지켜야 하는 팔관재계는 5가지 계와 3가지 계를 더한 것으로 5가지 계는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입니다. 3가지 계는 좋은 침상을 쓰지 않고, 가무하거나 향수를 쓰지 않고, 정오가 지나면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삼국유사>에는 원광 국사께서 세속오계와 육재일을 관련지어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원광국사께 세속오계를 받은 귀산이 묻기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데 가려서 하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자 원광 국사께서는 육재일과 봄, 여름에는 생명을 죽이지 말아야 하니 이것은 때를 가려서 하라는 것이오.”라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육재일은 신라시대부터 지켜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재일을 지키는 관습은 고려 시대까지는 이어졌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가 쇠퇴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유교식 제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제는 제사 지내다, 사귀다, 사람과 신이 서로 접하다고 되어있습니다. 천재지변과 질병과 맹수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다 유교 전래 이후 조상에 대한 추모와 공경의 표시로서 자리매김한 의례입니다. 한국에서 조상은 예로부터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요, 육신과의 이별일 뿐 영혼과의 이별은 아니라고 믿어왔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망자와의 영적 대화를 통해 산 사람의 추모와 공경의 뜻을 바치기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재와 제는 발음도 비슷하고 의식의 형태도 비슷해서 자칫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한자로 새겨보면 글자의 모양도 다르고 뜻도 전혀 다른 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정리해보면 불교의 재는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도 재식이라고 하며 승가에서 스님들이 공양하는 것도 재식이라고 합니다. 모두 다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삼가하며 청정하게 맑히는 수행적 입장이고 유교의 제는 죽은 이를 위해 음식을 바치며 정성을 들이는 의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알고 가야할 부분이 있다면, 불교의 재는 수행의 의미이지 제사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점점 차가운 새벽과 서늘해지는 저녁 가을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여일하게 수행정진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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