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 치문반 경운스님

가람지기 | 2021.12.28 16:28 | 조회 610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

 

치문반 경운입니다.

한문은 날마다 새롭고 새로워서, 배워도 외워도 늘 새롭습니다.

어느 날 생이지지 生而知之 에 대해 배우는데 생이지지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고 학이지지는 배워야 아는 사람, 곤이학지는 곤경에 처해서 애써서 배우는 사람, 곤이불학은 곤경에 처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라 설명해주시면서 교수스님은 치문반은 어느 근기에 속하나요?” 물으셨습니다.

저는 어느 근기에 속할까요?

 

처음 치문책을 받고서 크게 당황하고 난감했습니다. 전체 100% 한문책은 처음 만났습니다. 한자를 잘 아는 도반은 수월하게 독음과 뜻 새김을 해냈지만, 저를 비롯한 여러 도반들은 그저 본문을 적고 난자를 찾는 일도 힘들었습니다. 첫 수업 <위산대원선사 경책>의 한자는 저희에게 너무나 어려웠고, 하루하루 익혀야 할 강원 생활 습의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낯설었습니다. 어딘가 사극과 해병대 체험 중간쯤?

슬기로운 강원 생활이란 책이 있었다면, 좀 읽고 들어 왔을텐데요.>>

매사가 서툴고 어쩔 줄 몰라하며 수줍은 저희와는 다르게, 곧고 반듯한 모습과 봄볕처럼 다정한 미소가 가득한 어른 스님과 상반 스님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저 멋진 수행자의 모습을 이룰 때까지외치며 어찌 저찌 얼룩덜룩 깁고 덧댄 시간이 봄, 여름, 가을 세 철을 지났습니다.

 

한자 공부는 달팽이처럼 느릿하지만 코끼리 처럼 확실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한 도반은 농담처럼 진담을 스님 내 까막눈이 뜨였소. 쨈만 더 알려 주씨요. 피할 피, 벽 벽자 구분해서 좀 칠판에 써주시오. 벽지불 쓸 때도 비슷한 글자던데,”

봄철, 얼굴을 붉히며 서로의 무식함을 뽐내던 저희가 맞는지요.

한자를 단순히 외우다가 이제는 조금씩 옛 스님들이 저희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가르침도 마음에 담게 되었습니다. 거닐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행동의 위의와 시주물에 대한 수행자로서의 의무, 소임을 할 때의 마음가짐을 글로 다시 배우며, 지난 세 철 동안 주의와 경책 속에 배우던 습의들은 문자로 언어로 다시 익혀지고 있었습니다.

근래 고산지원스님 <면학>을 배웠습니다.

저희들이 참 재미있게 배운 글이 있었습니다.

내가 일찍이 지혜가 미치지 못하고 재주가 민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 배우기를 그만두는 사람은 보았으나, 음식이 다른 사람만큼 많이 먹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 먹기를 그만두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배움과 음식 먹는 것을 비유한 글이었습니다.

의식주가 조금만 부족해도 온갖 방편과 힘을 쓰는데 공부는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피하려고 한다는 말이 가슴이 콕 와 박힙니다. 삼시 세끼 밥은 꼭 찾아 먹으면서, 열심히 배워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초발심 수행자가 공부는 천 가지, 만 가지 이유를 만들면서 게을리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중에 저를 움찔하게 하며 더 이상은 뒷걸음질 칠 수 없게 하는 말씀을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세유구지이 혹부득자야하며 세유구지이 필득자야하니 世有求之而或不得者也 世有求之而必得者也

구지이혹부득자 리야 구지이필득자 도야 求之而或不得者 利也 求之而必得者 道也

 

세상에서는 구해도 간혹 얻지 못하는 게 있고, 구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으니

구해도 간혹 얻지 못하는 것은 이익이요.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다.

 

사람들은 세간의 이익을 만 번 구하여 만 번 얻을 수 없다 해도 쉬지 않고 시도하고 용맹해지는데, 도는 구하고자 반드시 구할 수 있는데도 앞길을 아득해하고 겁을 먹고 스스로 역부족이라고 획을 긋고 배움에 게으른 것을 경책하는 글입니다. 이 글은 공부와 수행을 쉽게 하려하고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하는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았고, 방일한 그 마음가짐이 탐심임을 알게 했습니다.

또한 수행을 글공부로만 행하고 있지 않았는지 혹은, 그조차도 하지 않는지를 스스로 되돌아 봐야 했습니다. 아무 이익도 없는 일에 시비 분별하며 헛된 것을 따라가고,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느낌, 생각들에 끄달리며, 정작 중요한 배움에 소홀했음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공부에 힘쓰라라고 합니다. 시간은 한정적이며 공평한 듯 하지만, 공평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남겨진 시간은 각자 다르고, 스스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그 인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화향순 형직영단 聲和響順 形直影端 인과역연 기무우구 因果歷然 豈無憂懼

소리가 알맞으면 메아리가 순하고 모양이 곧으면 그림자도 단정하다

인과의 도리는 그와 같이 분명한데 어찌 근심 걱정이 없으리오

위산스님의 말씀입니다.

메아리는 소리를 따라 울리는 것이고 그림자는 사람을 따라 움직입니다. 모든 일의 인과는 자신에게서 비롯되기에 몸과 마음을 바르게 배워 옳게 써야 하며 그 업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메아리처럼 그림자처럼 따르기에 배우지 않고 부질없이 날만 보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른 새벽 무거운 눈꺼풀을 올린 그 순간부터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하며, 일곱 근의 가치를 가졌다는 쌀 한 톨의 무거움, 이 자리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한 모든 인연들에 대한 감사함, 출가할 때 초발심 어느 하나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진심으로 마음 다해 살면, 그 실다운 열매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다짐하고 내일은 흔들리는 날들, <이익은 구한다고 다 얻을 수 없지만, 도는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말씀에 다시 한번 마음의 고삐를 죄어봅니다.

열심히 배워 수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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