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대중스님분들과 바이오혁명과 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이 폭풍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바세계 안에서 과연 출가 수행자로써의 우리는 어떤 시대정신으로 앞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 즉 생사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법문을 준비하기 위해 해인사 교수스님이신 보일스님께서 2년동안 불교신문에 연재하신 내용을 엮은 책을 <AI Buddhism>이란 책을 정독하였고 이 법문을 준비하는 데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는 시대, 초연결의 시대, 인공지능 로봇과 공존해야하는 시대, 창의성의 시대, 다양성의 시대, 클라우드, 빅데이타, AI , 블록체인, 가상화폐, 비트코인, NFT, 메타버스등 제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표현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 혁명적 변화는 불교에 있어서도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그라고 나노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기존의 고전적 인식에 대한 재해석과 새로운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깥세상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과 이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질병과 노화의 정복에 이어, 심지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시도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생로병사라는 고통의 기본구조, 그리고 윤회라는 개념에 대해서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적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불교는 이미 개발되었거나 앞으로 개발될 무시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기술들에 대해 그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대답을 준비하거나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할 사람은 바로 지금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현재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미래학자가 쓴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2007년에 나온 이 책은 9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미국 아마존닷컴 과학분야 도서 판매량 1위에 오른 책인데요, 저도 최근에 이 법문을 준비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인류가 생물학을 초월할 때’라는 원서의 부제가 잘 말해주듯, 과학기술을 통해 생물학이라는 인간 본연의 조건마저 뛰어넘을 미래를 내다보며 바로 그 초월의 시점이 ‘특이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 특이점은 ‘가속적으로 발전하던 과학이 폭발적 성장의 단계로 도약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문명을 낳는 시점’ 이라는 것입니다.
커즈와일의 주장은 이 특이점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둘째 그 시점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2015년에 그는 2045년까지 나노공학, 로봇공학, 생명공학의 발전 덕분에 인간의 수명을 무한히 연장할 수 있게 되고,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하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다소 흥미로운 그의 미래 예측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0대 말 무렵, 안경이 홍채에 직접 이미지를 투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 VR로 불리는 기술인데요.
VR은 Virtual reality의 약자로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을 말합니다. 머리에 장착하는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이기도 합니다. 2018년에 나온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와 영국 HBO에서 만든 <years and years>는 여러분이 꼭 보셔야 할 만큼 추천드리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눈부시게 발전된 첨단 기술이 인간에 이미 들어와 있는 현재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그 이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사유를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레이 커즈와일은 2020년대에, 나노봇이 현재의 의료기술보다 훨씬 더 발전하여 대부분의 질병이 사라질 것이며. 일반적인 인간의 식사는 나노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자율주행자동차가 도로를 점령할 것이며, 고속도로에서 인간이 운전하는 것은 금지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현실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실제로 의료 인공지능의 대표적인 예로써 IBM사가 개발한 Watson for Oncology가 있습니다. 이 AI의사인 왓슨은 이미 방대한 의학서적과 논문을 섭렵한 의료 인공지능 시스템입니다. 현재 가천대학교 길병원을 시작으로 전국 7개 병원에 이 시스템이 도입되어 이미 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왓슨의 영상진단 정확도는 현재 전문 의사의 실력을 뛰어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일론머스크의 태슬라에서 나온 완전자율주행 자동차는 잘 아실텐데요. 일론머스크는 1년뒤에 인간이 운전대를 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많은 리더들은 자율주행으로의 변화를 기정사실로 하고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2030년대에는 가상현실이 100% 진짜 현실처럼 느껴질 것이며, 2030년대 말에는 우리의 마음이나 의식을 업로드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 facebook의 최고권위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Meta로 회사 이름을 바꾸면서 또 다른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 이뤄질 것이며 직접 자신의 아바타를 설정해 앞서 말씀드린 VR 디바이스인 옵큘러스2를 쓰고 메타버스 세계에 입장해 현실처럼 섬세하게 묘사되는 그래픽과 실시간으로 상대방과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메타버스에 대해 다소 생소하시리라 생각이 되는데요.
그것에 대해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메타버스는 ‘초월하는’ 이란 뜻을 가진 접두사 메타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가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물리적 현실과 디지털 가상공간이 융합하는 세계입니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공간으로 진화한 개념이라고 보시면 쉬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디지털 내이티브라는 말이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세대를 통칭하는데, 미래학자 마크 프랜스키에 의하면 1979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제가 85년생인데 현재 42살이신 분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은 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싸이 월드 세대인데요.
이 싸이 월드가 메타버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스무살 때, 2000년대 초반에 이것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세계를 경험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를 대변해주는 아바타가 있고 나의 또 다른 가상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사진도 올리고 일기도 쓰고 친구들과 일촌을 맺고 친구네 공간에 가서 담벼락에 글도 남기고 친구들과 헤어져서 집에 와서도 연결되어 새로운 소통의 장이 열렸던 것에 대해 열광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고로 그것을 만들었던 회사는 사라졌지만 데이타는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로 페이스북이 생겼고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유투브 등 이제 우리는 이러한 소셜네트워크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이미 나를 표현하고 세계와 소통하고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연계되어 거듭거듭 우리를 비추고 있는 중중무진법계의 공간 안에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재의 메타버스 수준은 나의 일상이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세상과 결합하는 라이프로깅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등 모든 삶의 순간순간을 인스타그램이나 유투브에 올려 기록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상의 경험들마저도 데이터가 되는 과정입니다. 그 데이타가 거대 IT 기업의 자산이 되고 우리는 그 기업들이 제공하는 데이타를 무료로 이용을 하며 앞으로 나올 매타버스라는 새로운 페러다임 안으로 들어갈 연습을 했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유투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는데요.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같은 이 회사들은 각각 전 세계 2억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들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가상공간에서 문화, 사회활동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활동을 하고 실제 수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인터넷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로블록스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소통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라고 해도 이 메타버스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2040년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비생물학적 지성이 생물학적 지성(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10조 배 가량 능가할 것이다. 나노봇 구름으로 음식을 비롯한 현실의 어떠한 물질이든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45년에, 클라우드에 존재하는 합성 신피질에 인간 신피질을 무선으로 연결하여 지능을 10조 배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신이 되는 경지이지만 우리의 좌우뇌로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불교적 관점으로 보자면 무상, 고, 무아를 깨닫지 않는 한 윤회의 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테지만 그의 주장의 독특한 점은, 많은 과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의 출현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인공지능과 인간의 두뇌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며,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인간은 점점 기계처럼 될 것이고, 기계는 점점 인간처럼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기술적 특이점 이론을 바탕으로, '기술이 인간 지능의 유전적 한계를 뛰어넘도록 도울 것'이라는 주장도 했습니다. 즉 인류 2.0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 달리 말해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긍정적이며 팔다리나 장기를 기계로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 그 자체인 뇌를 기술로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주장이었는데, 현재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연구 스타트업회사인 뉴럴링크가 이를 위한 기술력을 공표했고 해당 내용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으며 순조롭게 개발하고 있는 만큼 현재에는 매우 현실성 있는 주장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해 화두를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생체보수주의자인지 기술진보주의자인지의 가치판단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의 정치적 진보나 보수의 기준은 인간의 신체와 과학기술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나의 몸이 과학기술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첨단 과학기술과 인체와의 결합에 어느 정도까지 관대할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결국 생체보수주의자와 기술진보주의자의 대립, 이것이 미래의 정치구도가 될 것입니다.
기술진보주의자등의 입장은 인간의 지능향상을 위해 유전자조작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생체보수주의자들은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수용은 인간을 기계화시키는 것이라며 반대합니다.
이것에 대한 물음은 당장 우리에게 급변하는 이 시대에 인공지능을 너머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나는 누구인가?’ 와 같은 화두와도 같은 물음일 것입니다.
또한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이자 불교의 고통에 대한 이해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4차 산업시대의 변화는 불교뿐만 아니라 자칫 인간다움에 대한 전통적 신뢰와 보편적 가치기준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제 수명연장을 넘어 어쩌면 영생을 꿈꾸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에 어떻게 변화된 모습으로 등장할지를 고민하는 문턱에 서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흥분되지만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 또한 피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것만 같은 이 운문사라는 수행 도량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마음챙김을 해나가야 할까요?
잠시 지금의 나를 사유해 봅니다. 출가라는 것은 아마도 멈추어서 알아차리는 시간이 아닐까요. 강원에서의 4년이란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업의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않고 잠시 멈춰서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배우며 조금씩 알아가고, 또 깨어나고, 대중생활 속 인욕행을 통해 내공을 기르고 좀 더 지혜롭고 자비로운 눈으로 이 엄청난 세상으로 나아가 보살행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또한 이곳 전통 강원에서, 한평생 수행으로 일궈내시며 회주스님을 비롯한 어른스님들께서 갖고 계신 청정함과 깊은 지혜와 자비의 안목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결코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더불어, 이 곳 No Wifi zone 에서 4년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얻게 될 도반스님들과의 친밀감과 우정, 어른스님과 선배스님을 향한 존경심 등 아날로그적 수행으로의 현장경험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인간으로써 앞으로 평생 지니고 가야할 매우 귀중한 자산이며 가치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의문과 물음이 끊임없이 이어지곤 하는데요.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붓다는 <잡아함경> 제 30권에서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모든 존재는 이렇듯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체이든 아니든 붓다께서 설하신 연기의 도리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와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물음이 던져집니다.
우리는 이 초연결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 승가의 가치를 창출해내고 전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것입니다.
매트릭스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매트릭스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