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임종환경 -화엄반 각연

가람지기 | 2022.04.17 16:25 | 조회 515

안녕하십니까.

<임종환경>에 대한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대교과 각연입니다. 차례법문에 대한 주제를 고민하던 중 몇 번의 시다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양친 부모님이 5일 간격으로 돌아가신 신도분, 말기암 판정으로 갑자기 돌아가신 어느 스님, 그리고 여느 스님보다도 수행자처럼 사시다가 돌아가신 101세의 보살님의 죽음 등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방학 내내 죽음이라는 화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업으로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임종 환경과 불교적인 관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보아 온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임종 전에 힘들어하거나, 여법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나,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더 희구하는 등, 그 모습은 모두 달랐습니다.

고통스러운 모습들을 보고 어떻게 해야 좀 더 편안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고, 임종을 맞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어 임종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법문 주제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재가불자들의 귀의처인 스님들이기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일반 대중보다는 더 많은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상이 신속함을 더 잘 깨우치고 더욱 발심 수행하는 큰 공부의 장이 될 것입니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앞두고 황망한 이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줄 수 있고 임종시에 유의사항을 잘 일러 준다면, 그것 또한 보살행을 닦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죽음 직전을 대비하는 여러 주의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죽어가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죽는 순간이 카르마를 정화하는 강력한 기회가 됨을 인지시키고 그가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의 잘했던 행동을 일깨우고, 마음의 본성에서 쉴 수 있도록 희망을 주고, 혹시 그가 살면서 큰 잘못을 했더라도 용서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 죽는 순간에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감정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간혹 망자를 옆에 두고 집안의 근심거리나 금전 문제 등으로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임을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죽는 사람에게 커다란 상처와 혼란을 주어 마음을 쉬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나쁜 갈래에 태어나도록 이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죽음을 앞둔 이가 평소에 수행을 했다면, 마음의 본성에 담긴 핵심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외적인 호흡이 멈춘 후에 내적인 호흡이 종결되기 전에 이런 말을 일러줘야 합니다.

아무개 여! 그대가 무엇을 보든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하든, 그것은 그대의 마음에서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근본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원래 갖추어진 자연스러운 광명임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일러 줘야 합니다. 이때 가장 수승한 것은 마음의 본성에서 쉬거나 수행의 정수를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대승불교권인 우리에게는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는 조념 助念 염불법이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죽음을 맞는 이가 스스로 기도와 헌신으로 부처님 정토를 구하여 이생에서의 삶을 참회하며 정화되기를 기원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며 아미타불의 현현을 마음 깊이 염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염불법문을 듣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며, 이런 놀라운 기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기억하게 하고, 앞으로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대의 영혼은 아프거나 사라지지 않음을 일깨워 줘야 합니다. 이는 죽는 순간에 품은 한 생각이 죽음 이후에 중음 상태에서 깨어날 때 가장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종 시 유념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를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바른 믿음을 내야 합니다.

 

죽음이란 이 몸을 버리고 다시 몸을 받는 것일 뿐 우리는 본래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고 믿어야 합니다. 다만 미혹과 업장이 두터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니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죽음은 이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기쁜 마음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과 용서입니다. 그의 잘한 행동을 일깨우고 마음을 쉬도록 유도해야 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새겨줘야 합니다.

 

둘째, 여러 사람이 염불하여 염불심을 도와야 합니다.

 

염불 소리는 너무 크게도 작게도 해서는 안 되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아야 합니다. 분명하고 맑고 깨끗해야 임종인이 염불하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염불할 때 보통 요령과 목탁을 사용하는데 신경쇠약자는 소리가 신경을 자극하여 오히려 편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음성으로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염불은 4아미타불염송이 좋습니다. 자구의 숫자가 적어야 임종인이 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마다 다르므로 특정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보다 임종인에게 편안한 방식과 상태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고 울지 않는 것입니다.

 

숨이 끊어지는 그때는 바로 범부, 성인, 사람, 귀신 중 어디로 향할 것인지 결정되는 중요한 때입니다. 임종인을 바로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히거나, 자세를 바꾸거나, 자리를 옮겨서는 안 됩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고통을 느끼면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 독을 가진 부류의 몸을 받게 되고 가족들이 우는 모습은 애정심이 일어나 그로 인해 세세생생 해탈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종교인의 삶 특성상 앞으로 많은 임종과 죽음을 만날 것이며 우리 또한 임종과 죽음을 언젠가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혼란에 빠지고 미혹하게 됩니다. 근원적인 순수함이 윤회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무조건적인 에너지는 감정의 형태로 고착됩니다. 만일 우리가 일상의 모든 순간을 제대로 점검한다면 바르도 상태에서 겪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생각과 감정 그리고 꿈속에서 반복해서 겪는다는 것을 예리하게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이나 현실에서 우리에게 많은 해탈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무지로 인한 단조로운 삶의 반복이, 삶 이후에 삶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어떤 기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지금 여기에서 해탈을 향하는 문을 건너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임종과 죽음을 준비하여 나도 이롭고 타인도 이로운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그것이 출가 수행자로서 위로는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시은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이며, 저의 본원을 잃지 않고 필경에는 깨달음을 얻는데 선량한 자량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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