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구경무아- 치문반 진성

가람지기 | 2022.09.29 15:12 | 조회 410

구경무아

치문반 진성

안녕하십니까?

구경무아- 마침내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주제로 법문을 하게 된 치문반 진성입니다.

글이라고는 두어줄 밖에 쓸 줄 모르는 제가 차례법문 석상에 올랐습니다.

무덥고 다사다난했던 긴 여름이 지나고 청명한 하늘이 좋은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철 저희 치문반에는 병고자가 많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도반스님들이 힘든 여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도반과 함께라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평소 제가 마음에 담아 둔 글이 있습니다.

 

심수만경전 心隨萬境轉

전처실능유 轉處實能幽

수류인득성 隨流認得性

무희역무우 無喜亦無憂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 구르고

그 마음을 따라 구르는 자리는 참으로 묘하구나.

그 흐름을 따라서 성품을 알면

기뻐할 것도 없고 근심 할 것도 없느니라.”

 

위 게송은 제 22조 마노라 존자께서 제23조 학륵나 존자께 설하여 5백 마리의 학을 제도한 게송입니다.

 

이 게송을 되뇌이면 저는 저의 출가할 때가 떠오르곤 합니다.

저의 본사인 흥륜사와 인연이 닿은 것은 6년 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도를 하며 석 달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른 스님께 문안인사를 드릴 때마다 어른스님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머리 깎아 줄까? ”

그렇게 어른 스님께서 거듭 말씀을 하심에도 저는 아무런 답변을 드릴수가 없었습니다.

출가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서 거절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빈 말씀을 드릴수도 없었기에 매번 그렇게 묵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어른스님께 문안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른스님께서 심오한 눈빛으로 저를 주시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걸망 메고 나랑 함께 다니자

저를 기필코 이끌어 주시겠다는 마음이셨나 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답변을 올렸습니다.

제가 만약 머리를 깎는 다면 어른스님께 머리를 깎겠습니다.”

그 후 제 자신에게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출가하여 어른스님의 상좌가 되겠노라.’

그 후 오랫동안 행해왔던 기도에 박차를 가하여 제 날짜에 원만회향하고 세속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 난생 처음 기이한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 어른스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내 흥륜사로 달려갔습니다.

... 어른스님께서는 기력이 다하셔서 아무런 말씀조차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뒤 입적하셨습니다. 살아생전에 저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내 상좌들은 다들 잘 따라오는데 너만 뒤쳐져...”

이 말씀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른스님께서 그리 기다리고 계셨음에도 그 뜻을 받들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서 입적하신 뒤라도 어른스님의 막내 상좌로 이름을 올리려 했지만...

끝내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뒤늦게나마 어른스님께서 입적한 그 해에 머리를 깎고 흥륜사에 입산하였습니다.

그 분이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비구니계의 큰 별 혜해스님이십니다.

 

그 분에게서 저는 배운 것이 있습니다. 오랜 날 금강경을 독송하며 마음에 새겼던 글귀가 있습니다.

 

구경무아 -마침내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이 글귀를 그리도 새겼건만 어찌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어른의 뜻을 받들지 못했는지...!

 

제가 어렵고 힘들다는 운문사를 지원한 것도 나를 내려놓는 데 가장 큰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자원하여 들어왔습니다.

, 진성 이라는 사람이 너무나도 부족하여 함께하는 도반스님들에게도 많은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함과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나를 내려 놓는다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원에서 생활하며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잘못 살아온 제 삶을 참회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증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구경무아- 마침내 나라고 할 것이 없다.”

이 글귀를 4년간의 화두로 삼고 앞으로 나아가려합니다.

 

끝으로 수업시간에 배운 <위산대원선사경책>의 한 구절을 읊으며 이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원행에 요가양붕하야 삭삭청어이목하고 遠行 要假良朋 數數淸於耳目

주지에 필수택반하야 시시문어미문이니라 住持 必須擇伴 時時聞於未聞

고로 운생아자는 부모요, 성아자는 붕우라 하느니라 故云 生我者父母 成我者朋友

 

먼 길을 갈 적에는 좋은 도반道伴과 동행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맑게 하고,

머무를 때에도 반드시 도반을 잘 가려서

수시로 아직 듣지 못한 법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요.

나를 완성시켜 준 사람은 벗이니라.

 

미흡한 저의 법문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스님, 상반스님, 도반스님!

대중 울력이 많은 가을철, 건강에 유념하시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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