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미니의 고민 - 사집반 혜진

가람지기 | 2022.10.01 13:45 | 조회 542

사미니의 고민

 

사집반 혜진


어느덧 쌀쌀한 기운에 따뜻한 옷을 한 겹 더 입어야 하는 가을이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사미니의 고민으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집반 혜진입니다.


저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사미니수계를 받을 때였습니다.

부처님 과거 전생에 무수한 세월 동안 보살도를 행하여서 선근공덕을 심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해보았지만, 한 번씩 삼악도에 떨어질까 걱정하는 마음에 막막해 질 때도 있었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머리를 깎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두렵기도 합니다. 어느새 초심의 마음은 사라지고 퇴보하는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10년도 아닌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벌써 마음이 풀어져버린 채 속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먹고, 자고, 스님은 짬짬이 공부하는 거라고 선배 스님에게 들었는데, 속가와 다른 생활과 집중력이 부족한 저는 일에 쫓기며 공부를 해나간다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다가 늦게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암송과 숙제, 논강 준비 등 해야 할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지금도 여전히 하루하루의 시간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강원 생활의 절반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금생에 깨달음을 이루고 말겠다는 원력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제는 오늘의 할 일이라도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점점 작아지는 저를 발견합니다. 또 이제는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을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어떨지에 대한 두려운 저의 모습을 마주하곤 합니다.


출가하기 전 15년 동안 기독교 신자였던 저는 신약성서 중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갖가지의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이웃 성자의 말씀을 지금 제가 지키려고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전각에서 부전을 하면서 꾸준히 기도 중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력을 다 해 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도 노력 중입니다. 자는 것, 먹는 것, 운력하는 것 등.


대중 생활을 하면서 과연 수행을 할 수 있을까? 이 바쁜 생활에 어떻게 열심히 기도정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다만 여기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대방에서 누군가가 저를 괴롭히거나 다툼이 일어나면 그 일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그 일만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먼저 저 자신의 문제로 삼지 않고 상대방이 잘못되었으니 변화되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내 생각대로 변화 되지도 않고 상대방이 정말 여기 와서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하다면 돌이켜보건대 스스로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되물어 본다면 같은 동업중생들끼리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변화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기도정진하며 도와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도반들의 마음과 몸을 치료해 줄 수 있다면 이것도 수행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은 파랗다. 정말 파란색으로 보이십니까? 새파란 하늘, 하얀 구름, 모두 우리가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정해진 틀 속에서 살다 보니 분별심은 증장되고 그 습을 안고 머리 깎고 산문에 들어온 저는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도반은 나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고 잘 도와주니까 좋고 저 도반은 항상 단점만 보고 일 못하는 것만 들춰내고 험담만 해서 싫고 등등. 마음속이 망상은 나날이 더 해지며 책으로 익히는 모든 선사들의 말씀들은 이론일 뿐 저에게 실천이 하나도 되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부처님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 제가 잘 하고 있는지 아니면 더 분발해야 하는지. 선가귀감(禪家龜鑑)에 화신투입(和身透入)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온몸이 통째로 뚫고 들어가다. 만일 이 일을 말하자면, 마치 모기가 무쇠로 만든 소에 기어 올라가 이러쿵저러쿵 묻지 않고 당장에 입부리를 댈 수 없는 곳에서 목숨을 떼어 놓고 한 번 뚫어서 온몸이 통째로 뚫고 들어가려는 것과 같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수행자는 평생에 목숨 걸고 해 볼만하지 않겠습니까?

평생을 밖을 보면서 살다 보면 이 한 생 육도윤회 벗어날 길 없고 부처님처럼 자신을 관하여 화신투입하여 돈오돈수는 못 하더라도 점오점수라도 하고 싶습니다.


서장에서 입니입수(入泥入水)는 진흙을 묻히고 물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물에 빠진 자를 건지려면 자기도 물에 들어가야 하고, 진흙의 늪에 빠진 자를 구하려면 자기도 진흙의 늪에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 중생세계로 들어가 함께함을 말합니다. 부처님도 보살님들도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하고자 사바세계로 오시는데 함께하는 도반들 꼴을 서로 봐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전염병으로 지난 봄 격리되었었습니다. 너무 아파 이러다 죽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너무 아프다 보니 나약해져 수행을 한다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도반들은 도시락을 배달 해 주고 저는 다시금 미우나 고우나 도반 없이 혼자 살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평생 한가한 날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기도가 되거나 어떤 한 목표를 가지고, 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소임이나 목표를 이루어 나아가며 일생을 살아간다면 천상이나 지옥에 있더라도 그 곳을 저 흘러가는 구름과 같이 (맑고 명백하게 하며) 여여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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