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산신각에서 찾은 불교의 포용성- 화엄반 효민

가람지기 | 2022.10.01 13:48 | 조회 596

산신각에서 찾은 불교의 포용성

대교과 효민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효민입니다. 운문사에는 많은 전각들이 있습니다. 그 중 칠성각에는 칠성, 독성, 산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세 성현들 중 산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리 나라 산신 신앙은 불교에서 수용하여 사찰 내에 산신각이란 형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산을 신령스럽게 여기는 것은 여러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인 신앙 형태이지만 사찰에 산신각이라는 공간을 두고 모시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모습입니다. 산신각과 비슷한 전각으로는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 칠성각 등이 있습니다. 이 세 성현을 한 건물에 나란히 봉안하여 삼성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산신을 단순히 민간신앙으로만 생각해 사찰 안에 있지만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지만, 올해 초 저희 절에 산신각 불사를 하면서 산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산신의 역사적 전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단군이 죽어서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산악숭배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국가 제사뿐만 아니라 산신제, 동신제, 당산굿 등과 같은 모습으로 민간에서도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이어졌습니다. 민간의 산신은 점차 불교 안으로 편입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불교 경전에서 산신의 연원을 찾아보면 화엄경세주묘엄품에서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자 수많은 보살과 신중들이 찬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산신은 부처님을 따르는 39위 화엄성중의 하나로 금강신, 주성신, 주림신, 주해신 등과 함께 주산신으로 등장합니다. 산신은 여러 자연물에 대응된 신들 중 하나로 나타나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호법신중의 모습을 보이다가 점차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불교상용의례집에 산신의례와 헌공이 포함됨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찰 건립이나 불사가 이루어질 때 산신각이나 삼성각이 들어가고 단독이 아니더라도 다른 전각에 산신을 봉안한다는 것은 한국 불교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건국이념을 성리학으로 내세워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었고 불교는 산속으로 빌려 들어가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전쟁 후 어지러운 시대 상황과 조선 후기 사회변동에 따른 혼란이 사찰 내에 산신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사찰 또한 사회적 변화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시주자들의 다양한 신앙적 욕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불교는 포용성으로 산신을 수용했습니다.


산신은 점차 산신각의 형태로 변화되어 신도에게 친숙한 기도 장소가 되었습니다. 일주문에 들어서 도량 가장 뒤편에 이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산신각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산신각을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봉암사 백련암에는 대권각이라는 이름의 산신각이 있습니다. 대권각의 자는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에 나타나신 권화의 의미입니다. 크게 중생을 권화하는 보살의 집인 대권각, 이렇게 한국 불교는 토속신앙의 신들을 방편의 보살들로 수용했습니다. 산신이 단순한 민간신앙이라 생각했던 편견을 깨뜨려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운문사에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산신이었지만 이번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불교가 민간신앙을 색다른 형태로 수용하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배척하지 않고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수용하는 방식은 제가 배워야하는 자비의 마음이었습니다. 앞으로 산신각을 지나갈 때마다 깊이 되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