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습니다
대교과 문광
출가(出家)하여 운문사에서 맞이하는 벌써 네 번째 가을이 되었습니다.
머리를 깎은 지 어언 4년, 어느덧 초심初心은 흐려지고 운문사의 하루 중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아침 일찍 일어나 먹는 커피 한 잔, "참 좋습니다."
두 번째, 듣고 싶은 칭찬 몇 마디, "참 좋습니다."
세 번째, 학인스님에게 주어지는 감사한 보시금, 감개무량할 만큼 "참 좋습니다."
네 번째, 매 철마다 맡게 되는 소임, 이제 소임 없이는 허전할 만큼 "참 좋습니다."
다섯 번째, 운문사에서 지켜야 하는 많은 규칙들,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참 좋습니다."
하지만 과연 "참 좋은 것이 진짜 좋은 것"일까요?
오늘 하루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에티오피아 어린이의 눈물이 들어있다면,
과연 참 좋은 것일까요?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칭찬과 비난 몇 마디에 울고 웃는다면
과연 참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주자들의 피땀이 서린 보시금의 무게가 단순한 기분 좋음으로 와 닿는다면
참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중을 잊고 자신의 이름을 빛내기 위한 소임 살이라면, 과연 참 좋은 것일까요?
화합을 위해 존재하는 계율이 어느덧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되어버렸다면,
참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출가와 많이 멀어져 있었습니다.
떠날 출出, 집 가家. 출가出家는 집을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집은 속세의 집, 가족, 인연들을 뜻하지만 제가 떠나야 할 진짜 집은 대상을 집착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승찬대사의 「신심명」 첫 구절은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네. 오직 간택함(취하고 버림)만을 꺼리면 되네.”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저의 하루는 늘 눈에 닿는 것, 귀에 들리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혀에 닿는 맛, 피부에 닿는 촉감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관념들에 대한 좋고 싫음의 분별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부처님의 삶을 떠올려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분소의를 입으시고, 걸식하시며 나무 밑에서 주무시고 깨닫지 못한 이들을 위한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 소박하고 거룩한 삶 앞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불만은 녹아버립니다.
참 좋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다른 생명의 아픔 위에 만들어진 것이었음을, 저 위대하신 스승의 삶을 통하여 배웁니다.
그리고 비로소 지금 이대로도 이미 참 좋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의 작은 오늘의 수행은 조금씩 조금씩 참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참 좋은 것들 없이도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제가 부처님의 길을 따라 부처님의 도량에서 이렇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인연들께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모든 괴로움을 여의는 그날까지, 행복한 수행자 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