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화엄반 원경
안녕하십니까, ‘일체유심조’를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화엄반 원경입니다.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 짓느니라.
이는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에 나오는 사구게로,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의 핵심이며, 원효대사의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원효대사께서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어느 토굴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 물이 담긴 바가지를 발견하고 시원하고 맛있게 마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를 피해 들어왔던 토굴은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무덤 속이었고, 밤에 마신 시원하고 달콤한 물은 사람의 해골에 고여있던 썩은 물임을 알아차린 후, 구토를 하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닫고 유학을 가지 않고 다시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출가 전, 잔병치레조차 하지 않았던 저는 출가할 즈음부터 한쪽 다리가 부어오르고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혈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혈전이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갑자기 나에게 왜 이런 병이 생겼을까 생각하며 제 몸 상태에만 매몰된 채 우울한 행자 시절을 보냈고 몸무게도 20킬로 가까이 늘었습니다.
운문사에 입학한 뒤, 저는 자꾸만 일어나는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막연히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나름대로 열심히 강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한 일체유심조는 단순히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이니 항상 좋은 마음을 일으키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정도였습니다. 힘든 울력을 해도 즐겁다고 생각했고, 몸이 조금 아파도 이 정도 통증은 늘 있으니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도반들이 물어봐도 늘 괜찮다고 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이것은 단지 나는 아프지 않다고 저의 병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 뿐, 일체유심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아프냐, 괜찮냐 물어보는 소리를 듣기 싫었고, 저를 병고자로 바라보는 게 싫었던 것입니다.
올해 루푸스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는데 ‘팔다리 부러진 것도 아니고, 당장 느껴지는 증상도 없는데 조심하면 되겠지’ 하고 그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다 여름철 시작 얼마 후, 고열과 구토로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열과 토를 멎게 하는 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뇌수막염과 폐기종 등 많은 장기에 이상이 생겨 의식불명인 상태로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중환자실에 들어갈 때,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 의사 선생님들의 노력과 저를 걱정해주신 모든 분들의 기도 덕분에 저는 약 2주만에 의식이 돌아왔고, 그 짧은 기간 동안 몸에 근육이 모두 빠져 10킬로 이상 빠졌고 피부도 허물처럼 일어나 한 꺼풀 벗겨지고, 몸에 크고 작은 흉터들이 생겨 있었습니다. 깨어난 뒤, 저는 그동안 저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제가 의식이 없던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다시 살아난 것은 부처님의 가피이구나’, 그러면서 동시에 며칠이었지만 죽음을 직면했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은사 스님께서도 ‘너는 부처님 덕분에 살아났으니, 새 몸 받았다 생각하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해서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다시 운문사로 돌아왔을 때, 크게 아파서인지 아니면 여름 한 철을 날렸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도반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즐겁게 지내면서 세상엔 내가 그렇게 크게 화내고 마음 낼 일이 없구나를 느꼈습니다.
담임 교수스님의 수업시간 끝에 늘 읽는 화엄경 사구게인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에 대해서도 새삼 가슴 깊이 새겨지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는 사건이나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일으킨 생각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이해되진 않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돌아보고 일깨워 무조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내지 않고, 아픈 것을 부정하지 말고 병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것을 잘 조복시켜 함께 잘 수행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왕삼매론에 나오는 열 가지 수행법 중 병에 대한 게송으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두서없는 법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