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공, 공
화엄반 마노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마노입니다. 저의 차례법문 주제는 ‘공, 공, 공’입니다.
축구공의 공! 이바지할 공! 불교의 공!입니다.
대중 스님들께서는 축구선수 손흥민에 대해 아십니까? 현재 안면골절 부상이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주장으로 뛰고 있는 선수입니다. 손흥민 선수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아시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이며, 항상 노력하는 겸손한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의 은사 스님께서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를 매우 좋아하십니다. 손웅정 씨의 인터뷰에 감명을 받으시고 영상을 찾아보시더니, 저에게 손흥민 선수가 지금 같이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멋진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손웅정 씨의 영향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종종 손웅정 씨처럼 저를 트레이닝시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할 텐데 싶어서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은사 스님의 말씀을 듣고 손웅정 씨에 대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손웅정 씨가 축구선수이던 시절, 주로 쓰는 발이 오른발이었는데, 왼발도 잘 쓰기 위해서 오른쪽 발에 압정을 박았다고 합니다. 오른발로 공을 차면 압정에 찔리는 고통을 받기에 왼발의 사용감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매일 빠지지 않고 운동과 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공사판에 가 일을 할 때도 일과인 청소와 운동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3시 반에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이 축구 훈련에 집중하지 않아 실수할 때는, 지나가던 할머니가 놀라 신고하겠다고 할 정도로 엄격하게 혼을 냈다고 합니다.
은사 스님께서도 나를 이렇게 혹독하게 트레이닝 시키시겠다는 건가 싶어서 갑자기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손웅정 씨의 트레이닝의 이면에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저를 두렵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서산대사의 선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에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될지 모르니.’라는 글귀를 손웅정 씨는 늘 가슴에 새겼다고 합니다. 평일과 주말에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쳤고, 모든 훈련을 함께 하며 몸소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운동장에는 100포 이상의 소금을 뿌려 겨울엔 눈이 빨리 녹을 수 있도록, 여름엔 건조하지 않아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끔 했다고 합니다. 항상 아들에게 축구선수로서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강조합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고. 대나무가 뿌리를 내리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뿌리를 내린 이후에는 하루에 20cm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기본기가 잘 잡혀 있으면 다음 단계부터는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적응할 수 있고, 위기가 닥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본기가 저에게는 출가 후 4년 동안의 운문사 강원 생활이었습니다. 새벽예불을 가서 졸더라도 법당에서 졸고, 아직 달과 별이 떠 있는 아침에 발우를 펴고, 또래처럼 놀고 싶지만 큰 방에서 경전을 독송합니다. 이렇게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는 운문사의 생활이 저에게는 하드트레이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4년 동안 닦은 기본기는 평생의 수행 생활에 튼튼한 뿌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은사 스님께서는 ‘수행의 기본’은 ‘시줏돈 무서운 줄 알아 아껴 쓰고, 시주의 은혜에 보답하여 반드시 회향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십니다. 물을 절약하느라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꽃에 물을 주고, 여름엔 수확하고 남은 못난이 감자 이삭을 주우러 호미와 포대를 챙겨 마을에 내려갑니다. 낫또가 가격이 비싸다고 하시며,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남아 70% 이상 세일하는 것만 사서 드십니다. 종종 좋아하시는 산딸기 앞에서 한참 고민하시다 결국 발걸음 돌리시는 일도 많았습니다. 또 휴지는 3칸만 쓰게 하십니다. 어느 날 휴지 많이 쓴 것을 들킬까 봐 변기에 버렸는데, 막혀서 엄청나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은사 스님은 항상 당당하시며 그렇게 아끼신 돈으로는 불사에 동참하시고, 장학금 주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쓰십니다. 처음엔 속상하고 창피하기도 했지만 은사 스님의 깊은 속뜻을 알고 나니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절약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 스님의 절약과 보시, 회향의 삶을 통해 두 번째 공인, 이바지할 공供! 을 몸소 배웁니다.
사집반 수업시간 때 '줄탁동시(啐啄同時)'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손웅정 씨 또한 자신과 아들을 줄탁동시에 비유했습니다. 병아리가 부화할 때 여린 부리로 껍데기의 안쪽을 쪼다가 힘에 부치면,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 어미 새가 바깥에서 도와 껍데기를 같이 쪼아줍니다. 이렇게 하나의 알이 깨지는 데는 서로 돕지 않으면 하나의 세계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가 축구를 시작하겠다고 한 것이 껍데기를 쪼기 시작한 것이라면, 저에게는 출가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첫 부리질이었습니다. 아직 알을 깨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은사 스님을 비롯한 운문사 어른 스님들과 도반 스님들, 대중 스님들이 알을 깰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나'라는 알을 깨고 나와서, 세 번째 공空인 무아를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손웅정씨의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으로 시작한다』를 구매하였는데요, 내용이 너무 좋아서 삼장원에 기부하려고 합니다.
이상으로 불교계의 손흥민이 되고 싶은 화엄반 마노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