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자네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사집반 서현

가람지기 | 2023.12.28 20:14 | 조회 85

자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안녕하십니까, 운문사 학인 여러분, 사집반 서현입니다.

저의 발심계기와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생후 6개월부터 어깨 탈골로 아팠고 일년 중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면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어 심한 통증으로 분한 마음에 밥을 노려보며 울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즉석에서 한입 크기의 주먹밥을 싸주셨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먹을 수 없는 상황에 늘 화가 났습니다. ‘내 육신을 내 맘대로 쓰지도 못하나?’ 하며 지금의 육신에서 늘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다음에 태어나면 힘차고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왕이면 힘 센 독수리로 태어나고 싶었죠.

 

어떤 날은 다큐멘터리 동물의 세계를 보던 중에 독수리가 살아있는 생명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고 상상했습니다. 만약 독수리로 태어나면 살아서 꿈틀거리는 작은 동물을 잡아 죽여 피비린내를 맡으면서 목으로 삼켜야 하는 과정을 말이죠. 너무 소름끼치고 토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방법은 모르지만, 육신을 받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머리에 안개가 낀 듯 계속 답답했고, 그러던 중 카메라의 커다란 눈으로 세상을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것의 인연으로 사진 현상하는 것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사진을 인화하던 어느 날, 수은이 함유된 정착액이 오래되어 산화된 줄 모르고 만지게 되었습니다. 온몸이 마비되고 심장이 멈춰가고 몸에 경련이 일며 혀가 말리고, 말린 혀는 목구멍을 단단히 틀어막았습니다. 들숨 한 번으로 호흡은 끊어졌고, 의식만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육신을 벗어날 좋은 기회구나, 생각했고, 삶에 미련 같은 것은 없었기에 고요하고 평온했습니다. 고요하고 침착한 내 안의 이 존재는 무엇인가 궁금했습니다.

 

잠시 후, 영화를 보듯이 사람들의 얼굴들이 세세하고 빠르게 보였습니다. 가족, 친척, 친구, 하물며 길에서 스쳐지나간 사람들 까지도 말이죠. 한참을 보던 중에 뭔가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네. 과제를 풀지 못하고 이생을 마감하는구나, 어쩔 도리가없네. 이 고통스러운 육신, 빨리 버리자. 그런데 슬퍼할 부모형제들이 맘에 걸리는군...”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멀리 작고 밝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빛 덩어리를 향해서 날아갔습니다. 응급실에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돌아온 걸까? 도대체 어떤 힘이 작동하는 건가? 의구심이 일어났습니다. 생사의 경계에서 육신의 허망함을 느끼고 염세주의에 빠져서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집 근처에 있는 절에 갔습니다. 건축물의 웅장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그 후로 2~3일이 지나면서 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 동안 하루는 밥 1숟가락, 또 하루는 물 한 컵, 또 다른 하루는 깻잎 장아찌 1... 몸은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뼈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쇠약해지고 있을 때, 지인이 절에 가서 불보살님 앞에서 간절히 108배를 해보라고 추천을 해 주었습니다. 아침잠이 많은 저였지만 새벽에 눈이 떠졌고, 어머니가 쓰시던 108염주를 손에 들고 절에 갔습니다. 그러나 손에 힘이 없어서 염주를 돌릴 수 없었습니다. 염주를 내려두고 예불이 끝나는 시간까지 천천히 같은 속도로 절을 했습니다. 좌복없이 마루에서 절을 했기에 양쪽 무릎엔 청바지에 피가 엉겨붙어서 무척 아팠습니다.

 

법당 문을 나서서 만난 아침햇살의 청명함과 싱그러운 산의 공기를 마시니 몸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로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사를 찾아다니던 중에 혜국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육신이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성장했다는 관념이 뒤집어졌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기운과 수많은 이들의 노고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육신에 대한 불만으로 살아온 것을 참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광반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자네, 어디에 있는가?

 

환지사은還知四恩이 심후마深厚麼?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환지사대추신還知四大醜身 염념쇠후마念念衰朽麼?

사대의 추신이 순간순간 늙어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환지인명還知人命 재호흡마在呼吸麼?

인명이 숨 한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기좌편의시起坐便宜時에 환사지옥고마還思地獄苦麼?

앉고 눕고 편할 때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차일보신此一報身이 정탈윤회마定脫輪㢠麼?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당팔풍경當八風境하야 심부동마心不動麼?

팔풍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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