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해탈향입니다. 저는 오늘 ‘운하항복云何降伏 진심嗔心’을 주제로 법문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금강경』에 의하면 무주상無住相, 즉 상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데, 어떻게 진심을 다스려야 합니까?
대중 스님들, 진심을 아십니까? 진심이라는 것은 성낼 진嗔과 마음 심心을 쓰며 삼독심의 하나이고, 화를 잘 내는 마음, 지혜를 어둡게 하고 깨달음을 방해하는 세 가지 번뇌 중 하나입니다. 또한,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고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저의 출가는 우연히 화엄산림법회를 가게 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절에 가면 보이는 부처님과 보살님, 기도하시는 스님들, 천수경과 반야심경, 그리고 보시라고 하면 과일과 떡, 나물밖에 몰랐던 저에게 그 법회는 머리에 천둥이 치는 별나고 별나던 신세계였습니다. 그땐 한자로 된 그 문장이 실시간으로 뜻이 여러 번 바뀐 것이 너무 신기했고 알면 알수록 환희심이 저절로 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알고자 출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동경만 했었는지 행자 때 갑자기 왠 면접과 시험이 우수수 쏟아지고 약간의 고통과 통곡이 있었지만 무난히 참아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던지 어느 날부터인가 유독 자꾸 눈에 띄는 것이 생겨버렸고, 계속 떨쳐보려고 절도 열심히 하고 마주치지 않으면 되겠지 했지만 아견我見 인견人見 중생견衆生見 수자견壽者見..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견해와 관념에 빠지며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고 미움이 생기고 우울한 상태로 빠지는 그 지옥에서 저는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법회에서 만났던 어른 스님의 말씀이 잊히지가 않았습니다
"해탈향 행자님, 내생에 뱀으로 태어나기 싫으면 화를 내지 말고 참아라. 딴 데는 신경쓰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저는 수없이 그 말을 되새겨 보았지만 그때는 감정이 깊게 우울한 상태여서 매일 매일을 저 자신을 관찰하며 생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못 본 척 안 보고 말 안 하면 그만이겠지, 했으나 시간이 흘러 치문 시절이 지나고 사집이 왔을 때 그 우울함은 묵묵히 쌓여 스트레스의 산에서 화산 폭발하듯이 쾅 쾅 터지며 화를 뿜뿜 내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어 버린 집착은 버려야 하는데, 미움과 원망으로 바뀌어 쉴새없이 불어나 멈출 줄 몰랐고, 시비가 생기면 그저 그대로 부딪히다가 결국엔 제 몸에 상처를 남겨버렸습니다.
그 당시 교수 스님께선 '법당을 안 가면 소 한 마리 잃은 격이다'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난 아픈데, 절도 못 하는데' 이런 생각들이 가득 차,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신심은 바닥이 나버렸고, 결국 그 말들은 돌고 돌아 송곳이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제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위에서 권하는 대로 마음을 사유하기도 하고, 걸음 걸음마다 진언을 독송하기도 하며, 펑펑 울어보기도 했지만 한번 시작된 그 불꽃은 확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사집반 겨울철에 작은부전 소임을 맡으면서, '어차피 2년이 더 있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제가 한 것은 참는 것인 인욕과 잘해주자, 하는 자비의 마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이不二', 즉 너와 나는 둘이 아님을 되새기며,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공통점을 하나 둘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금강경』 제4장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의 무주無住, 즉 '머무는 바 없다'는 말은 바라는 바가 없고, 의도하는 바가 없으며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응무소주應無所住 행어보시行於布施
소위부주색보시所謂不住色布施 부주성향미촉법보시 不住聲香味觸法布施
응여시보시 應如是布施 부주어상不住於相
마땅히 응당 텅 빈 마음이 되어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해야 하나니, 이른바 색에 얽매임 없이 보시를 해야 하며,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에 얽매임 없이 보시를 해야하며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하며, 그 어떤 상에도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는 보시로 그 경계에 따라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보시에는 재물로 인천의 복덕을 구하는 재보시財布施, 불법을 공부하여 베푸는 법보시法布施, 다른 이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좋은 모습이나 인상, 좋은 말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무외보시無畏布施가 있습니다. 한편 재물 없이 할 수 있는 무재칠시無財七施에는 늘 편안한 얼굴로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자비로운 눈빛으로 대하는 자안시慈眼施, 악담은 그만, 희망을 불어넣는 말로 애어시愛語施, 지극하게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심시心施, 신체로써 남을 돕는 신시身施, 자리를 양보하는 상좌시床座施,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방사시房舍施가 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시비가 일어나면 바로 사과를 하고, 친절하게 대하게 되며, 나를 멈추는 방법을 알게 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하루하루 달라진 저를 느껴 갑니다.
대중 스님들, 바위가 누르고 있어도 그 틈새를 비집고 잡초가 자라나듯이, 번뇌의 스위치는 생각, 감정, 심리작용 속에 있습니다. 또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멀리서 찾지 말고 다 같이 몸과 마음으로 수행하는 보시행을 실천합시다.
마지막으로 신라 선덕여왕 시대 부설거사의 임종게와 함께 마치겠습니다.
목무소견무문별 目無所見無分別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이 없고
이청무성절시비 耳聽無聲絶是非 귀에 듣는 소리 없으니 시비가 끊겼네
분별시비도방하 分別是非都放下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고
단간심불자귀의 但看心佛自歸依 다만 본성을 보고 스스로 귀의하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