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해인입니다.
땀으로 젖은 옷이 마를 날이 없던 여름이 가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드는 가을이 왔습니다. 사계절은 지내보자고 하며 왔던 강원에서 벌써 세번째 계절을 맞이하고 차례법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경전공부에 발을 들인 내가 무슨 법문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습의문제로 의기소침해진 치문반 도반스님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보잘 것 없는 살림살이지만 복덕이 부족한 제가 이 수려한 호거산에 둘러싸인 운문사까지 올 수 있게 해 준 기도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릴 적 어머니 보살님 손에 이끌려서 절에 다닌 것이 인연이 되었을까요. 막연하게 스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며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치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듯이 성년이 되던 해에 난치병 선고를 받으며 꿈을 접게 됩니다. 상처받은 마음에 절에는 완전히 발을 끊어버렸지만 그 끈을 완전히 놓치는 못하고 책과 법문 등으로 위로하며 치료와 사회생활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절 인연이 찾아온 것일까요. 어느 선지식과의 대담에서 ‘동물중에 유일하게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돈과 물질을 쫓아다니며 먹고 자는 것이 전부인가’ 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마치 취모리로 머리카락이 베어지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더 늦으면 안되겠구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해보자. 참회의 절을 해서 모두 비워내고 깨끗하게 하여 내생에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동진 출가하자’ 라는 원을 세우고 하안거 동안 매일 천배씩 백일기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합장) 제가 이 원력을 성취하기 위해
혼신을 다 바쳐 정진하다가
설령 죽게 되거나 지극히 어려운 곤경에 빠져들거나
또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끝까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책상과 기도집 맨 앞페이지에 적어두고 수시로 읽었던 법장스님의 발원문입니다. 이처럼 저는 육체의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허락을 받고, 절에는 저에게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저의 기도는 첫날부터 고비를 맞이합니다. 다리의 고통과 서러움에 울며 좌복 위에서 하루를 다 보내고 천배를 겨우 마치고 넋이 나간 채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육체적 고통은 말 할 것도 없고, 현생도 아닌 겨우 내생의 꿈때문에 힘든 기도를 하냐는 주변의 비웃음이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오후에 좌절했다가 새벽이 되면 다시 일어나 첫차로 절에 가서 법당청소를 하고 절기도 후에 사시예불에 참석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스승도 도반도 없이 매일 같은 일정과 장소, 자의반 타의반의 묵언, 하루 한끼의 부실한 공양. 도무지 변화라고는 전혀 없는 단순한 생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제 마음은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신심이 하늘까지 뻗쳐서 힘이 넘치다가, 다음 날엔 기복신앙으로 빠지는 것 같아 자괴감에 버스정류장에서 한시간을 고민하다 절에 가기도 했습니다. 울고 웃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백일, 회향날이 되었고, 방생과 선방 문고리까지 잡게 되며 무사히 원만회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자신감을 얻은 저는 3년동안 하안거와 동안거 기간에 매일 천배 백일기도를 하였고, 좋은 인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3년째 회향하던 해에 우연히 들린 절에서 출가하여 운문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자유인을 꿈꾸며 힘들게 하게 된 출가생활은 자유와는 거리가 먼 또 다른 반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들과 새벽 4시 기상, 세 번의 예불과 공양, 수업과 입선에 울력의 반복, 옷과 신발 작은 것 하나에도 변화가 허락되지 않는 생활이 반복됩니다. 과연 내가 이를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반복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아 매일 경책을 들을 때면 과연 4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끝없는 의심이 밀려올 때면 저는 출가 전의 기도를 생각합니다. 원이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조차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기도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몸에서 다시 신심이 솟아나며 또 한번 일어서게 됩니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지금 그대들에게 당부한다. 모든 형성된 것은 부서지고야 마는 것이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대열반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흔히 정진이라 하면 용맹정진을 생각하여 장좌불와와 삼천배 기도와 같은 힘든 수행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진의 뜻은 선의 가치가 있는 행위, 아주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노력을 말합니다. 매일 새벽에 하는 108배, 발우공양과 입선에서 독송 등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강원의 생활 자체가 수행이고 이를 지속해나가는 것이 정진인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수행력이 약한 저는 늘 한결같지 못하고 흔들리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럴때마다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한 그 모든 요소들이 결국 나 자신을 만드는 토양이 된다는 믿음을 굳건히 하면 지금의 일상이 다람쥐 챗바퀴처럼 지루하고 나 자신을 누르는 힘겨운 생활일지라도 살아있는 자체가 감사하게 됩니다.
이제 이 가을이 가고 겨울 한철을 보내면 사집이 되어 부전반이 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부족한 점이 많아 상반스님들과 어른스님들의 걱정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행무상이라, 그 무덥던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의 동문회도 치뤄냈듯이, 매서운 겨울의 혹독한 시간을 겸허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견뎌낸다면, 봄에 새순을 돋우듯이 의젓한 사집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많은 신장님들과 불보살님들께서 외호하시는 운문사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마음의 등불로 삼아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세끼 밥을 꼭꼭 씹어먹듯이 알차게 보낸다면, 3년 후엔 치문반도 여법한 운문인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번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시고 한 명의 비구니가 나오기를 늘 참고 기다려주시는 어른스님들과 교수사 스님들, 생활에 불편함없게 여러가지로 돌봐주시는 소임자 스님들, 인내심으로 습의해주시는 상반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싶다는 저에게 삼성각 부전 소임을 양보해 준 치문반 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