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기준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사교반 도솔입니다.
기준의 사전적 의미로는
基 터 기 準 준 할 준 을 사용하며 사물에 기본이 되는 표준이라고 정의합니다.
출가 전 저의 기준은 가족이었습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가족이 항상 먼저였고 그 다음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하고자 하는 것에 후회 없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저에겐 집안 어른들이 항상 우선이었기에 밖에서 놀고 있다가도 전화 한 번에 친구들을 두고서 집으로 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기준에는 명, 리. 즉 명예와 돈 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예와 이익이 가져다주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주목받는 삶, 필요한 것과 서비스 등을 구매하거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저 개인적인 만족감 또는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의 시선을 누리게 해주지만 동시에 허무함과 허탈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처님의 말씀 중 공덕녀와 흑암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조건은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살게 해 준다면 수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자는 오케이를 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려온 동생을 본 장자는 언니와 닮은 곳이 하나도 없어서 놀랐습니다.
장자는 동생을 쫓아내려 하였으나 흑암녀는 소리치며 “내가 가면 언니도 나와 함께 가야 한다.”라고 말했고 장자는 결국 공덕녀마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출가를 한 우리 수행자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지금의 사회는 출가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행자의 기준은 신심과 알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신심의 정의는 “어떤 것을 옳다고 굳게 믿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믿음도 중요하지만 궁금함에서 생겨나는 신심도 신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불상마다 형태가 다른지 손 모양은 왜 다른지 다 비슷해 보인데 명호가 왜 다 다른지.
세속에 있을 때 불자였지만 사실 잘 몰라요, 정말로, 그저 같이 가는 저희 어머니 보살님이 시켜서 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정말 한순간이지만 이 선택을 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을 제가 가진 많은 업을 만나야 했었고, 지금도 만나는 중입니다.
요즘 독송하는 금강경을 보면서 나는 기준은 없다고 말했지만 알게 모르게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많은 업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제 10 장엄정토분에 나오는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입니다.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알게 모르게 기준이라는 것에 집착하여 살았고 남의 눈과 이목을 신경쓰고 있었고 못 해본 것들에 대한 후회를 핑계로 삼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문제와 마주하니 처음에는 부정도 했었으나 지금은 부정도 하고 인정도 하면서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인다면 기준이라는 게 필요할까요
여러분들은 기준 뿐만 아니라 무언가에 집착하여 지금을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