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숨 한 번에 - 화엄반 대겸

가람지기 | 2024.06.14 20:07 | 조회 147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대겸입니다. 저는 '숨 한 번에'라는 제목으로, 지난 4년 간, 주변에서 병고와 죽음을 접하면서 느낀 바를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이는 우선 저 자신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출가할 무렵 제가 마주했던 가장 커다란 문제가 어떤 형태로 답을 찾아가고 있는지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한번 들어 보시고, 이 생사의 문제에 대해 함께 사유하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손을 도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로서 '영적 돌봄가'의 일을 보조하는, 즉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 분들을 만나뵙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은 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둔 환자들이 오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만나 뵌 환자들은 거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대화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분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모두가 각처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이렇게 죽음을 앞둔 모습으로 누워 있는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다행히 부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영적돌봄가 스님께서는 제 손에 아미타경보현행원품을 들려 주셨고, 저는 여러 병실을 오가며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선 눈을 감고 있는 분들께는 다가가서 깨어 있는지 여부를 살펴야 합니다. 저는 불과 몇 뼘을 사이에 두고 앉아, 환자가 숨을 내쉬는 것을 봅니다. 숨이 빠져나와 가라앉은 몸이 그대로 멈춥니다. 1, 2, 3, 4. 제 눈은 미동도 없는 환자의 얼굴에 고정된 채, 찰나가 억겁이 되어 그 자리에 얼어붙습니다. ‘돌아가셨나?’ ‘내가 뭘 하면 되지?’ 그때 다시, 환자가 숨을 들이쉽니다. 안도감에 작게 한숨을 쉬며, 그제서야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여쭌 뒤, 조심스레 운을 떼고 경전을 펼칩니다. 환자 분이 즉각 알아들을 수 있도록 구간별로 강세를 다르게 주어서, 속도는 듣기 편하도록 천천히, 그러나 너무 단조롭지는 않도록 높낮이를 조절해야 했습니다.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었던 건, 저는 무엇보다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들이 과연 환자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가? 죽음이라는 사건이 눈앞에 현실로 도래한 이들에게, 이런 산 자의 몸부림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경을 그렇게 읽어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출가한 이래로, 그렇게까지 집중을 해서 독송에 몰두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어떻게든 경의 뜻을 온전히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읽고 있는 구절을 이해한 상태여야만 했기에 눈은 수시로 앞서가야 합니다. 재빨리 딱 필요한 만큼만 뒤의 글귀를 훑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고 있자면 어느새 옷자락 사이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오직 빨리 외워서 끝내겠다는 기세로 금강경, 보현행원품을 해치우듯 읽어내리던 시간들은 무엇이었나, 하는 헛헛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환자분께 보현행원품독송이 끝나고 여쭈었습니다. 눈도 못 뜨고, 목소리가 안 나와 소통이 안 되던 분이었습니다. "내용이 참 좋죠?" 하기가 무섭게, “,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어느새 눈물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그 방학 동안 놀랍고도 당연한 일이 계속됐습니다. 제가 제법 부처님 제자로서 할 법한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같은 환자를 다시는 못 보게 되는 일이 며칠에 한 번씩, 계속해서 찾아왔다는 것. 그날그날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일지에 기록을 남기고 병원에서 나오면, 저는 바로 방으로 들어갔고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병실에서 들고 나는 숨 한 번에,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가고, 가을철이 왔습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게, 이번에는 제가 누워 있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위장병 때문에 약을 먹게 됐는데, 어찌 된 것인지 숨 한 번 잘못 쉬었다가는 속이 뒤집힐 듯한 메스꺼움이 항상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끼니마다 한줌씩 되는 알약을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구역질과 싸우며 꼬박꼬박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자기 전에도 약을 먹었는데, 빨리 깊이 잠들지 못할 경우 위가 경련을 일으키며 저를 깨웠고, 저는 한참을 버티다가 뛰쳐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약을 먹어도 큰일, 안 먹어도 큰일, 약을 다 먹은 지 한참 후에도 알 수 없는 후유증에 시달리며 병원에 출입해야 했습니다.

 

제대로 앉아 있지도 누워 있지도 못하고 어딘가에 기대어 있자면, 병원에서 만났던 환자들의 모습이 아른거렸습니다. 누워 있자니 몸이 배기고, 혼자 힘으로 앉을 수도 없어서 침대 각도를 이리저리 조정하고, 갖은 쿠션과 베개와 담요를 동원해도 결코 편해 보이지 않던 그들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눕기라도 하면 제가 병실 침대에, 또는 관 속에 시체가 되어 누운 것 같았습니다. 몸이 중력에 순응해 바닥으로 꺼지는 것이, 지대가 무너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었고, 문득문득 '나는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선가귀감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이 몸은 조금도 탐을 내거나 아까워할 것이 없다. 하물며 백년을 잘 가꾸어 기른다고 할지라도, 숨 한 번에 모든 은혜를 저버리고 마는 것이다.’ 숨 한 번에 이 '모든 은혜'를 저버릴 날들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고 치며 버티는 이 현실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사실 매 순간 죽음을, 그리고 생명이 사그라드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숨이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 육신의 변화를 보면서.

 

출가하기 불과 몇 달 전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새벽의 한 응급실에서 황급히 여러 검진을 예약하고 텅 빈 복도에서 대기하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어떤 불치병이 진행되고 있어서, 당장 오늘 죽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겠다. 오히려, 얼마나 자연스러울까.' 저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에 압도되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무상감, 허무와 조우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정신이 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지금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전 호스피스 자원봉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보다 이삼십 년은 연배가 있으신 동료 봉사자 분들과 함께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들의 몸을 씻기고, 주무르고, 처음 접하는 찬송가를 어설프게 따라 불렀습니다. 전부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익숙해지기 위해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체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방학 중에도 그와 마찬가지로, 환자들을 위해 경전을 읽고 부처님 제자로서 할 법한 말을 골라내며, 결국 이번 생에 빌려 온 이 육신을, 정신을 돌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 작업은 지금도, 저라는 환자를 대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증일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병든 이를 돌보는 이는 곧 나를 돌보는 것이요, 병든 이를 간호하는 이는 곧 나를 간호하는 것이다.’ 간병의 공덕에 대해서는 익히 많은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일련의 경험을 거치며,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간병의 공덕이 그리도 큰 이유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무상, , 무아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됨이 아닐까?

 

한 시인은 말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우리는 별과, 우주와, 진흙과, 쓰레기와,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죽어가는, 그리하여 살아가는 것에서 나의 존재를 보고, 또 그 라고 할 만한 독립된 존재는 결국 없다는 것을 알고, 다만 수행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만이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는 우주에 혼자 남겨지기에, 한 사람의 생명이 오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현실을 돌이켜 발심의 순간으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죽음과 마주하는 것은 저에게 있어 발심의 순간이었고, 그 발심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아픈 나 자신과 타인을 돌보며 죽음과 생명의 덧없음을 관하고, 또 생명의 희유함을 사유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번민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여 불보살님의 대행원력으로 삼계의 대도사로 거듭나기를, 그리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데 동참하시기를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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