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냄에서 벗어나는 마음챙김
봄철 혜명
안녕하십니까?
오늘 뜻깊은 이 차례법문 자리를 마련해주신 어른스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릴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봄이 깊어갈수록 피어나는 꽃들을 보니
법구경에 (나오는 게송이 떠오릅니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그러나 착한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스른다.
모든 방향으로 퍼져 나간다.”
여기 계신 스님들의 법의 향기가 중생들을 향해 흘러넘치기를 축원드립니다.
오늘 저의 법문 주제는 성냄에서 벗어나는 마음챙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책상에 앉아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가 앞에 서더니 “무슨 화난 일 있어?” “아니 없어” “근데 얼굴이 왜 화난 표정이야” 몇십 년 전의 일인데도 제 기억 속에는 “왜 화난 표정이야”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더군다나 스님의 얼굴이 편안해야 하는데... 책임감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강원에서도 몇몇 상반스님들이 “웃으며 지내요...”하며 걱정을 해주실 때가 있는데 익혀온 습, 불선업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에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타인에 대한,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성냄의 원인이었습니다.
성냄을 『청정도론』에서는
“마치 두들겨 맞은 독사처럼 잔인함을 특징으로 가진다. 그것은 마치 한 모금의 독처럼 퍼지는 역할을 한다. 혹은 자기의 의지처를 태우는 역할을 한다. 마치 숲속의 불처럼. 성내고 있음으로 나타난다.” 라고 말합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분노 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성을 내고 성냄에 압도되고 성냄에 정복되면, 적을 기쁘게 하고 적에게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 법이 찾아온다.
첫째는 흉한 꼴이 된다. 둘째는 잠을 잘 못 잔다.
셋째는 큰 이익을 얻지 못하고 손해만 본다.
넷째는 재물을 얻지 못하고 있던 재물도 잃어버린다.
다섯째는 명성을 잃어버린다. 여섯째는 친구와 친척 및 가족이 그를 떠나버린다.
일곱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비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냄이 왜 일어납니까? 불만족 화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탐욕, 오랜 윤회의 습성입니다.
둘째는 무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어리석은 주의력입니다.
때문이라고 아비담마에 나와 있습니다.
『맛지마 니까야』 톱의 비유 경에서는 화를 내지 않는 인욕의 수행으로
“내 마음은 그것에 영향받지 않으리라. 악담을 내뱉지 않으리라. 이로움과 함께 연민을 가지고 머물리라.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증오를 품지 않으리라.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성냄을 제거하는가?
성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부처님 말씀에 의거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숨 보기 사마타 고요한 집중입니다.
둘째는 성내는 마음이나 괴로운 느낌 보기입니다.
셋째는 성내는 원인보기입니다. 지혜로운 주의로 있는 그대로 보기입니다.
넷째는 각자 업의 상속자임을 숙고하고 상대 이해하기, 상대의 좋은 점 기억하기입니다.
다섯째는 자애로운 마음을 갖기 보시하기입니다.
여섯째는 참회, 감사, 서원 세우기입니다.
“치문사집 때는 상반에게 인내하고 사교 때는 도반에게 인내하고 화엄 때는 자신에게 인내하라”, 담임교수스님께서 수업 때 해주신 말씀이십니다. 금당에서는 자신의 업식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최근에 제 마음안에 부끄럽지만 일어난 성냄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지대방에 있는 이불에 오백원 동전만한 얼룩이 묻어 있었습니다. 도반에게 물어보니 홍삼을 먹다가 흘렀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얼룩 닦아 주겠지... 생각했고 방선 전까지는 시간이 40분이 넘게 남아있어서 얼룩을 흘린 도반에게 애벌해달라고 했습니다. 방선 전까지 처리하지 않는 도반을 보니 성냄이 올라왔습니다. 성냄의 특징이 두들겨 맞은 독사처럼 잔인한 것처럼 정말 숨이 가파지고 그 도반을 향해 잔뜩 독이 올라왔고 잠들기 전 불쾌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서 정랑을 오고가며 어제의 사건이 떠오르면서 번뇌가 새벽부터 괴롭혔습니다.
오백전 새벽기도 중에는 제대성중 정근을 하는데 입으로는 제대성중을 크게 하는데 머릿속에는 ’어떻게 그럴수 있지, 이해 안 돼‘하며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지대방에 들어가면 그 얼룩이 당장 눈에 들어와 기분이 나빠졌고 그 도반에게 협조하지 않으리라 앙심을 품었습니다.
왜 나만 걸리는가 다른 도반들은 걸리지 않는가 궁금해서 다른 도반에 물어봤습니다. 그 도반은 그 얼룩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 정말 다르구나... 내 문제구나... 각자의 걸리는 화의 원인이 다르구나... 성냄은 숲속의 불처럼 그 도반에게도 옮겨 붙었습니다.
제 마음이 문제이기에 숨보기를 하며 일어난 번뇌를 다른 대상에 집중하였습니다. 요즘 정통입구에 붙어있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띠 꽃이 피었습니다.‘ 마음챙김을 하며 성냄은 탐욕보다 거칠어서 알아차림이 쉬우니 화내는 원인에 대해 숙고해 보았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를 싫어했고, 제 말이 무시당하는 느낌이 있었고, 제가 그 도반에 대한 기대, 바램, 탐욕이 있었습니다. 도반에게 말하는 저의 태도나 말투도 곱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법은 너무나 명확해서 저의 변명, 합리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계, 대상 탓이 아니라 원인을 제 안에서 찾아보니 이해가 되고 화가 누그러들었습니다. 인과가 역연하고 각자가 업의 상속자임을 숙고하고 상대의 좋은 점을 보니 부끄러움이 올라왔습니다. 용심을 잘 해야 돼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바늘조차 들어갈 구멍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오백전 기도 때는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축원을 했습니다. 내려놓으니 가벼워졌고, 대중생활의 큰 이익은 상대를 통해 자신을 반조해 보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제 자신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화를 낼 수는 없을 것이며 화를 낸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자애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매일 저녁 본사 붓다선원에서 하고 있는 발원과 공덕회향을 합니다.
그 내용을 마지막으로 차례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발원
붓다, 담마, 상가에 예경하고 귀의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 수행하여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합니다.
오온을 몸, 마음, 무상, 고, 무아, 부정으로 보아 자만, 갈애, 사견 버리기를 발원합니다.
언제나 깨어있음으로 탐,진,치에서 벗어나 만족, 자애, 지혜 깊어지기를 발원합니다.
마음, 몸, 입으로 지은 저의 모든 선한 공덕 모여 생멸하는 연기법 보기를 발원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그들이 지은 선업의 힘으로 슬픔이 없는 열반에 이르기를 발원합니다.
붓다께서 보이신 바른 법이 이 땅에 오래 머물기를 발원합니다.
공덕회향
갈애, 생에 대한 집착, 사견, 무지 등의 번뇌로 물든 모든 존재들에게 오늘 하루 수행하고
계를 지키며, 보시하고, 법문을 설하고 들은 저의 이 공덕을 공평히 나누어 드립니다.
이 공덕이 탐, 진, 치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선정과 열반에 이르는 원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