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천만겁난조우
치문반 재현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意
안녕하십니까. "백천만겁난조우"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치문반 재현입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외게 되는 개경게의 한 구절이지요, "백천만겁난조우"는 저에게 참으로 깊이 와 닿는 말입니다. 저는 50대의 늦은 나이에 출가해서 1년의 행자생활을 거쳐 이제 막 치문의 두번째 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백천만겁토록 만나기 어렵다는 보배같이 귀한 인연들 덕분에 제가 한 명의 수행자로서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차례법문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백천만겁에 난조우한 일이니, 이 소중한 기회를 통해 저의 소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맛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구멍이 뚫린 나무판자를 바다에 던져 넣는다. 마침 바다에서 눈먼 거북이가 백년마다 한번씩 떠오른다고 하자. 그 눈 먼 거북이가 백년마다 한번씩 물위로 떠올라서 뚫린 나무판자의 구멍속으로 목을 끼워 넣을 수가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어느 시절 어느 날에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구들이여, 눈먼 거북이가 백년마다 한번씩 물위로 떠올라서 나무판자의 구멍속으로 목을 끼워 넣는 것이 한번 악도에 떨어진 어리석은 자가 인간의 몸을 다시 받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나는 말한다."
이 유명한 법문을 들을 때마다 저는 사람으로 태어나 부처님께 귀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 몸 받기가 그렇게나 어렵다고 하는데, 출가하는 인연을 얻기는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저는 젊었을 때 출가 인연이 있었지만, 세상의 즐거움에 이끌리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 줄로 착각하다가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이가 들고나서야 비로소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급히 속가의 인연을 뒤로하고 출가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출가를 하고서도 저는 그 인연이 귀한 줄을 잊고 온갖 번뇌망상에 시달렸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들다는 행자생활이 이 50대에게는 어땠겠습니까. 관절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뚝뚝' 소리가 나고, 밤마다 손과 발이 저리고 붓고, 염불을 외워도 자고 일어나면 백지가 되어버리는 기억력까지....! 노쇠해가는 몸에 끄달리며 괴로웠습니다.
그런 행자시절을 무사히 마치고 너무나도 원했던 치문반 생활을 시작해서도 저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마음을 챙기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백씨로서, 반장으로서 첫 철을 보내면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힘들어하는 도반들을 잘 챙기거나 돕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도 자꾸 올라왔습니다. 체력의 한계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나?"하는 망상조차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중에 5박6일 봄방학 출타로 본사에 돌아갔을 때, 영단에 올려진 40대 젊은 영가님의 사진을 보고 그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영가님은 어렵게 번 돈을 꾸준히 보시를 해오던 시주단월이었는데, 사기를 크게 당하고 좌절한 나머지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렇듯 목숨을 걸 만큼 귀한 것을 보시해 주는 덕으로 내가 절에서 잘 먹고 쓰고 있었구나 그렇게 어렵게 모은 돈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시주하시는 분들과의 백천만겁난조우한 인연 덕분에 제가 수행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풀뽑기 공장에 풀뽑으러 온 노동자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들어온 참수행자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한자로 부처님을 가리키는 "불佛"자는 "사람 인"에 "아니 불"자를 쓰지 않습니까. 부처님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즉, 중생이 아닌 길을 가겠다는 것인데, 저는 다른 사람의 목숨과 같은 귀한 시주를 받으면서도 중생심의 들끓는 번뇌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봄방학 출타를 마치고 돌아온 저는 운문사에서 우리 치문반 15명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도 백천만겁난조우요,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울 수 있는 것도 백천만겁난조우인데, 이 길을 함께 할 귀한 인연이 15명이나 모였으니 보통 백천만겁난조우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귀하고 귀합니까.
나이도, 생김새도, 근욕성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한 배를 탔습니다. 4년동안 서로의 아픈 팔, 다리가 되어 함께 노를 저어가며 망망대해를 건너가겠습니다. 지금 제 앞에 놓인 이 순간순간이 백천만겁난조우하다는 것을 늘 잊지 않고, 수시로 찾아드는 번뇌와 망상을 이겨내고 담대하게 부처님 법을 지키고 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게송으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기런가,
자라나 사람 노릇 잠깐동안 나라더니,
눈 한 번 감은 뒤 내가 또한 뉘기런가, 나무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