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쌀 한 톨의 선용기심善用其心-화엄반 혜성

가람지기 | 2025.01.04 19:53 | 조회 112

쌀 한 톨의 선용기심善用其心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혜성입니다.

 

무더운 여름 노전 소임을 맡았습니다. 대웅전 청소하러 가는 길, 부처님 전에 놓여진 초 한 자루, 쌀 한 봉지 그리고 향로에 꽂힌 수많은 향, 예불 시간 법당을 울리는 불자님들의 웅장한 염불 소리. 많은 이들의 염원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입니다.

 

대중스님들께서는 쌀 한 톨의 무게를 아십니까? 一米七斤! 쌀 한 톨의 무게가 무려 7근이라고 하니 그 무거움은 가히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번의 공양을 하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지금 법상을 밝히고 있는 이 초, 우리의 더위를 식혀주는 에어컨, 무엇보다 하루 세 끼 우리의 몸을 보전하기 위해 먹는 음식들. 이처럼 우리 출가수행자들은 불자님들의 간절함이 가득 담긴 시주물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 지친 몸을 이끌어가다 보면 시은의 지중함을 망각한 채 살아가곤 합니다. 부처님과 옛 어른들께서는 시주의 은혜가 지중함을 거듭거듭 말씀 해놓으셨습니다.

 

서천28조 가운데 제16조 라후라다 존자의 아버지 범마정덕은 전생에 한 비구를 시봉하며 여러 가지 의식주를 공양하였으나 그 비구는 정진을 게을리한 까닭으로 도안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뒤에 그 집에 버섯으로 환생하여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는 일화가 전등록에 전해집니다.

이를 두고 자경문에서는 今生未明心하면 滴水也難消니라.’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소화하기 어렵다는 말로써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주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 출가자들이 시은을 갚기 위해서는 시주물을 아껴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 복과 지혜의 구족은 필수입니다. 그렇다면 대중 스님들께서는 복을 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요?

 

운문사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지금!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복 짓는 일은 양보 말라시던 어른 스님의 말씀에 제게 주어지는 모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과유불급이었을까요? 의도와 다른 결과들에 실망하며 , 그리고 열심히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사중 물건을 아끼고, 내 것을 나누고, 남들보다 조금 더 움직이는 것으로써, 이만하면 잘 사는 것이라 위안 삼으며 마음 한구석 빠른 속도로 커가는 번뇌들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 금강경10 장엄정토분에서는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하셨습니다. 졸업을 앞둔 지금도 머무르지 않는 마음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머무르는 마음을 써왔고 그 집착하여 머물렀던 마음들이 곧 고통을 이루는 조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여러 선사들께서는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아무것도 구할 것이 없어 마음 없는 것이 곧 도라는 無心是道를 말씀하셨습니다. ‘잘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야지하고 애쓰는 마음은 저로 하여금 열심히 살았다는 상에 머무르고, 인욕 했다는 상에 머물게 했으니 애쓴 만큼 끝없이 무언가를 구하며 결과에 울고 웃는 제 자신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는 단지 노력이었을 뿐 바른 노력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스스로가 부처임을 믿지 못하고 수행하기를 어려워하는 저 같은 수행자를 위해 화엄경』 「정행품에서는 지수보살이 문수보살에게 거듭 묻습니다.

"어떻게 허물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롭지 않은, 훼손할 수 없는, 깨뜨릴 수 없는, 물러남이 없는, 움직이지 않는, 뛰어난, 청정한, 물들지 않는, 지혜가 선도하는 몸과 말과 뜻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찬탄하며 문수보살은 말씀하십니다.

"선용기심(善用其心)이라. 마음을 잘 쓰면 온갖 뛰어나고 묘한 공덕을 얻느니라.”

이 선용기심으로 공덕을 얻는 방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세울 수 있는 보살의 서원 141개의 게송으로 답변되는데 여기서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각에 오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정법 누각에 올라서 일체를 철저히 보기를 원하며,

잠에서 막 깨었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일체 지혜를 깨달아서 시방을 두루 살피기를 원하며,

길을 걸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청정한 법계를 밟아서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원하며,

무더운 여름 지극히 더울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온갖 번뇌를 떠나서 일체 번뇌가 다하기를 원할지어다.

 

"청정한 행"에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채우는 모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서 마음을 잘 쓰는 것. 머무르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마저도 머무르지 말고 끝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며 평범한 일상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늘 중생에 대하여 서원과 보호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도록 마음을 향상시켜야 할 뿐인 것입니다.

 

결과에 웃으면 중생이고 과정을 담담히 즐기면 보살이라고 합니다. 대중 스님들, 저와 함께 보살이 되어 마음 잘 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인간 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는 더 어렵다는데, 운문사 청정 도량에서 매일 아침 눈 뜰 수 있음에, 안행 중 고개 들어 파란 하늘을 마주할 수 있음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합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더라도 저의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다함이 없으리니. 생각 생각에 상속해서 사이가 끊어짐이 없고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게 하겠나이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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