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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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호거산 사리암 오시는길 아세요...()

가람지기 | 2006.04.18 07:27 | 조회 4661

경북 청도 호거산 사리암

▲ 휘어지고 굽어진 소나무 숲엔 솔 향이 넘쳐 흘렀다.

동지(冬至)가 지나면 사나흘에 낮의 길이가 한 뼘씩 길어진다더니 정말 하루 해가 눈에 띄게 길어졌다. 겨울임을 느끼게 해 주는 듯 매서운 추위가 며칠간 살갗을 콕콕 찌르더니 어느새 오후엔 노곤함이 밀려오는 그런 날씨다.

입춘 추위가 밀려오고 있지만 차가운 공기 속엔 미약한 입김 같은 봄기운이 느껴진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으나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날 봄은 분명 다가오고 있다. 황토빛 산 뿌리를 훤히 드러낸 산에도, 앙상한 가지로 월동하고 있는 나무들도 새 생명과 새싹을 틔우기 위해 지표 속으로, 껍질 속으로 이미 물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산사를 찾으니 주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산사를 찾느냐" 묻곤 한다. 별다른 대꾸 없이 피식 하고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나는 산사 찾는 길에서 줍기도 하고 흘리기도 하는 사색이 즐겁다. 깊은 산중의 상큼한 기와 깔끔한 정(精)은 불혹의 나이를 살아오면서 옷가지 껴입듯 덕지덕지 껴입고 넋까지 비집어 넣은 속세의 풍진을 닦아주고 털어 내어 말끔하게 씻어 준다.

의식할 것 없으니 흐느적거리듯 걷거나 쫓기듯 종종걸음을 치거나 하며 혼자 걸으면서 산세를 둘러본다. 그곳에서 읽을 수 없는 글들을 듣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읽는다. 수목과 잡초, 산짐승과 미물조차 삼매의 경지에 든 듯 조용한 산사.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은 그 산사 찾는 길에는 주워 올 것이 꽤나 많다. 그 길에서 망각으로 잊혀진 추억을 줍고 잃어버린 나를 줍는다. 여유를 줍고 넉넉함을 챙길 수 있다. 하여튼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 산사를 찾는다고 말한다면 너무 아리송한 대답일 것같아 그냥 피식하고 웃을 뿐이다.

▲ 삿된 마음을 놓고 가라는 표식인 듯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여여하게 다녀 온 산사의 뒷맛은 뭐라고 할까? 한여름 오랜 갈증 끝에 만난 옹달샘의 청량감? 한겨울 꽁꽁 언 손 녹여 주던 모닥불의 따뜻함? 그런 뭔가 있기에 훌쩍 다녀오곤 한다.

산사를 찾을 때마다 느끼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지만 자연은 참 순리적이다. 싹 틀 때 싹 돋고, 녹음질 때 그 잎새가 무성해진다. 가을이면 영락없이 결실을 맺거나 몸뚱이를 감싸던 잎새를 떨군다. 제 아무리 고운 색으로 단풍이 들었더라도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뿌리로 돌아갈 낙엽이 된다.

좀 더 오래 두고 구경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욕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때가 되면 그 때에 맞게 자신을 낮추거나 포기하는 게 자연이다. 넘치도록 화려한 아름다움도 미련 없이 버리고, 과하게 밀려오는 인간들의 칭송 따위도 매정하도록 냉정하게 떨구는 게 자연인 것이다.

인간들의 그런 칭송과 눈길은 그냥 아양일 뿐이란 걸 자연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문득 '사람은 땅을 본받아야 하고, 땅은 하늘을 본받아야 하며, 하늘은 도를 본받아야 하고, 도는 자연을 본받아야 한다'는 노자의 말씀이 머리에 맴돌다 수박 씨처럼 입술에 툭 걸린다.

▲ 험한 벼랑길이지만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져 있어 오르는 길이 지루하지 않다.

자연은 언제나 그렇게 있을 뿐이다. 자연은 하는 것 없으면서, 또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자연은 욕심도 없고 거짓도 없다. 억지도 부리지 않으며 오직 순리만 따를 뿐이다. 선악(善惡)도 없고 미추(美醜)도 없다. 진위(眞僞)도 없으며 고락(苦樂)과 영욕(榮辱)도 없다. 자연은 우리를 일깨워 줄 스승 중의 으뜸 스승이기에 자연에서 배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절한 다툼과 질식하도록 철저한 질서, 도태와 생존의 대립이 숨어 있는 걸 알게 된다. 인간들의 알량한 정이란 것은 애당초 없으나 분명한 생성의 순서가 있고 순리가 있다. 그러기에 약자는 죽고 강자만 살아 남는 정글 법칙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그게 자연이며 순리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떤가? 낮은 물에서 높은 물로 자리바꿈하려 부단하게 아등바등 몸부림을 친다. 몸부림이 모자라면 술수를 쓰고 술수가 모자라면 거짓이나 협잡사기를 친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고, 생존 질서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 척도로 법을 만들었다. '법(法)'이란 글자를 가만히 보면 물 수(水)에 갈 거(去)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 흐르듯 그렇게 조정하고 판결한다는 뜻이리라.

▲ 겨울 산중 미물들을 위한 보시물이 바위 곳곳에 놓여있다.

그러기에 헌법 조항을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법은 따라야 하고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들이 형성한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최소의 도리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방귀 뀐 놈이 큰소리 친다"더니 버젓이 범법 행위를 해 놓고는 "편파 수사니, 형평이 맞지 않느니"하면서 패악질을 해대고 있다. 그것도 떼거리로 말이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 떼 쓰는 아이들이라면 어르고 달래보고 그러다 영 안되면 엉덩이라도 두드려 일깨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악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소위 사회 지도층이란 인간들이 떼거리로 그러니 참말 한심스럽다.

공권력 중의 공권력, 아니 공권력이라는 수준을 넘어 국기의 근간이 되어 물 흐르듯 사회 질서를 순조롭게 하는 사법부의 구속영장 집행조차 무력화시키는 그들의 패거리 작태. 그 작태에서 순리에 역행하는 파멸이 예감되어 암울한 슬픔이 밀려온다.

한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신조어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더니 이젠 "유권무속(有權無束) 무권유속(無權有束)"이란 말이 생길 법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소싸움으로 잘 알려진 청도에 있는 호거산 사리암을 찾았다.

▲ 계곡에 두툼하게 얼어붙은 얼음이 겨울 산중을 느끼게 한다.

호거산(虎踞山)! '호랑이가 걸터 앉아 있는 산'이란 뜻인가? 어릴 때 지지리도 말을 안 들으면 "요즘 호랑인 뭘 잡아 먹어. 저놈이나 잡아가지"하며 신세 타령하듯 야단을 치시던 어른들의 푸념이 생각난다. 진짜 요즘 호랑이 뭐하나 모르겠다. 국민들 혈세나 축내고 살맛이나 떨어뜨리는 그런 인간들 안 잡아가고…. 산 속의 호랑이가 보이지 않으니 이젠 국민들이 호랑이 행세를 하여야 할 것이다. 호랑이가 되어 저런 인간들 덥석 물어가야 할 것이다.

사리암을 찾기 위해서는 운문사 숲길을 지나야 한다. 운문사 진입로에 있는 솔밭 길은 어느 산사의 진입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울창하고 아름답다. 매표소를 지나면 걷게 되는 숲길엔 솔향이 물씬한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짧게는 100년 안팎부터 길게는 수령 200~300년은 됨직한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다.

천년 세월을 버텨온 이런 숲길에선 무거웠던 발길도, 혼잡한 머리도 가벼워진다. 왜곡되고 점철된 역사만큼이나 기둥은 물론 솔가지 하나 반듯하게 펴진 게 없다. 이리 휘고 저리 굽어진 소나무들이 고단한 듯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 벼랑에 세워진 절이기에 축 벽을 높이 쌓았고 그 위에 전각들을 세웠다.

솔숲을 자세히 보니 수백 년 노송의 밑동에 하나 같이 생채기가 또렷이 남아 있다. 일제 치하 전쟁 물자로 쓰던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칼집을 냈던 상흔으로 보인다. 아직 아물지 않은 역사의 아픔은 진행형인 듯하다. 어쨌든 험난한 세월을 버텨낸 한 그루 한 그루의 소나무가 대견하고 고맙다.

햇살이 중천에 드리우는 시간인데도 소나무 숲길은 산 그림자에 파묻힐 정도로 깊고 울창하다. 무색의 길이기에 마음대로 덧칠을 할 수 있는 사색의 길이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 가보니 어느덧 사리암 주차장이 나온다.

사리암은 운문사 산내 암자로 간사할 사(邪)와 떠날 리(離)가 합쳐져 '삿(邪淫)된 것을 여의는 암자'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30~40분 정도 벼랑길을 걸어야 하지만 가로등까지 촘촘하게 서있는 것으로 보아 불자들의 발길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두 사람쯤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벼랑길 양쪽엔 돌담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가파른 경사에 울퉁불퉁한 길로 순탄하진 않지만 길들이 예쁘게 정돈되어 있다. 소꿉놀이하듯 아기자기한 그런 눈맛이 느껴지는 돌길이다. 한 겨울 배고픈 산중 짐승에게 베푼 보시물인 쌀과 조, 그리고 씨앗들이 군데군데 바위 위에 깔끔하게 공양되어 있다.

▲ 좁은 공간에 터를 잡다보니 지붕을 평평하게 하여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계곡은 말라 있고 알몸을 드러낸 겨울 산, 등걸처럼 몸뚱이뿐인 나무를 보고 삭막하다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세와 수목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겨울이다. 그늘에 감춰지고 나뭇잎에 숨어있던 산의 깜찍한 매력과 흉허물도 여지 없이 드러내는 게 겨울 산이다.

사리암으로 오르는 길도 그랬다. 계곡은 말라 있고 나무들은 벌거벗어 음한 곳, 귀한 곳 다 드러냈다. 의외로 정갈한 느낌을 준다. 삿된 마음 모두 털고 올라가라는 듯 감춤 없이 보여 준다.

나반존자(那畔尊者)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운문사 사리암은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을리에 소재해 있다. 사리암(邪離庵)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 국사가 937년(고려 태조 20년)에 창건하였다.

그후 찾는 이가 별로 없어 산중 암자로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무정한 세월이 1천여 년 흐른 1845년(조선 헌종 11) 효원대사가 중건하고 신파 스님이 천태각(天台覺)을 건립하며 세상에 알려지자 불자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 나반존자님을 모셔 놓은 천태각이 마치 제비집처럼 바위에 매달려 있다.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려야만 참배를 할 수 있다.

1851년(철종 2) 현재의 나반존자상을 봉안한 후 영험한 나반존자 기도도량으로 알려지며 불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수행처이자 기도 공간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사리암에 전해내려 오는 설화가 경내 안내판에 잘 기록되어 있다. 옛날 사리암 바위굴에는 수행하는 사람이 한 명이면 한 사람 분의 쌀이, 두 사람이 공부하면 두 사람 분의 쌀이, 열 사람이 기도를 하면 열 사람 분의 쌀이 나오는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욕심이 생긴 대중 한 명이 쌀이 나오는 구멍을 크게 하려고 막대기로 들쑤셨다. 그런데 웬걸 콸콸 쏟아지길 기대했던 쌀은 나오지 않고 물만 솔솔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후로는 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삿된 마음이 상존할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다.

이곳에는 천태각과 관음전이 있고 산신각도 있다. 전각 전체가 벼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천태각과 산신각은 마치 제비집처럼 벼랑에 매달려 있다. 천태각은 참배할 수 있는 공간이 워낙 협소하다 보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참배를 해야 한다. 워낙 급경사라 축 벽을 쌓아 불사한 전각들은 지붕을 평탄하게 했고 그 지붕을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올라 온 길이 아스라이 드러난다. 다시 저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올랐던 길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다시금 발길을 돌린다. 문득 오를 때 가로등을 수리하던 전기공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낮이면 햇살 받아 생체 활동을 하고 밤엔 어둠을 덮고 쉬어야 할 나무들이 밤에 찾아오는 불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밝혀 놓는 가로등에 속앓이를 할 것을 생각하니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한 생각 고쳐 먹으면 백팔 번뇌가 백팔 은덕으로 바뀐다고 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혜로움을 백팔 개만 찾아낸다면 예토(穢土)가 정토(淨土)로 변한다고 했다. 그러면 인생 고해(苦海)가 인생 낙해(樂海)로 될 것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가로등 주변 나무들이 자연의 순리대로 밤에는 어둠을 덮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미물의 축에도 끼지 못할 나무들이지만 심산유곡에서조차 인공 불빛에 순리를 유린당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전각의 기왓장 하나까지도 스님들 얼굴이라고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기왓장에 마음 쓰는 것보다 가로등에 시달림 받을지도 모를 나무들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더 고매한 얼굴이자 마음일 것이다.

▲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자칫 삿된 마음에 헛발이라도 놓게 되면 수십 길 낭떠러지로 던져질 듯하다.

피로가 온몸을 엄습해 온다. 껍질뿐인 몸뚱이가 삿된 마음으로 나를 유혹한다. 어찌 보면 지금껏 껍데기를 시봉(侍奉)한 게 삶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껍데기가 없으면 내가 존재할 형체가 없기에 모든 것을 껍데기에 바쳤다고 변명하며 이제부터라도 참 나의 모습을 찾고 싶다. 껍데기의 꼬임을 뿌리치고 여생을 뚜벅뚜벅 걷고 싶은데 그럴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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