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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성도

가람지기 | 2008.04.09 13:03 | 조회 4933
      팔상성도(八相聖圖)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여덟 장면으로 나타내어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역사상 실존하는 인물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극한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기에 
      사람들에게 그만큼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는 곧 그 자체로 불교의 요체를 알려주는 동시에
      교훈적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오랜 옛날부터 이 팔상성도가 즐겨 그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하였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팔상도는 인도 녹야원(鹿野苑)에 남아 있는
      돌로 새긴 그림이며, 또 그림으로는 5세기 무렵의 중국 윈깡(雲岡)석굴에도
      팔상도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절에서 보이는 정형화된 팔상도와는 다소 다르지만,
      그림의 대체적인 구도와 내용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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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아주 오래 전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대대로 내려온 많은 재산을 모두 나눠 주고 출가한 수메다라는 수행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탁발을 하러 마을로 내려간 수메다는 연등부처님이 출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이 기회에 깨달음의 씨앗을 뿌리리라 깊이 다짐을 하였습니다.
수메다도 다른 사람들처럼 연등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 하였으나 이미 도시에는 왕의 지시로 모든 공양물이 부처님께 바쳐져 공양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꽃 일곱 송이를 들고 지나는 한 여인을 본 수메다는 그 꽃을 자신에게 팔 것을 간청했고 부처님을 향한 그의 진지하고 진실한 마음에 감동한 여인은 수메다에게 꽃을 모두 주었습니다.
수메다는 그 꽃을 연등부처님께 바쳤고 부처님께서는 수메다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마음을 중생들에게 보이기 위해 대중이 바친 꽃을 허공에 떠 있게 하셨습니다.
그때 마침 연등부처님과 제자들이 지나는 길에 진흙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수메다는 진흙 웅덩이 위로 자신의 머리를 풀어 엎드리며 언젠가 자신도 지금의 연등부처님과 같은 존재가 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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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람강생상(毘籃降生相)
    히말라야 남쪽 기슭 초목 지대에 자리한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부인, 백성들은 성인이 태어나실 꿈이라는 예언가의 말에 장차 태어날 왕자를 생각하면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마야부인은 해산일이 다가오자 당시의 관습에 따라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인 코올리성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왕비행렬이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마야부인은 무우수나무의 신비스런 향기에 끌리어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갑자기 산기를 느껴 오른손을 뻗어 무우수나무의 동쪽 가지를 잡고 아기 왕자를 낳았습니다. 그 날이 바로 음력 사월 초파일입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보시고는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모든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 말은 태자가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훌륭한 인간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깨달음을 구하는 모든 중생 하나하나가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지혜의 외침, 생명 존엄의 선언입니다.
    정반왕은 태자의 이름을 고타마 싯달타라 지었습니다.
    태자가 태어나자 나라에는 땅이 편편해지고 마른 나무에 꽃과 잎이 피어나는 등 서른두 가지의 좋은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태자가 태어나고 닷새가 되던 날,
    당시 유명한 수행자였던 아시타 선인이 태자를 뵙기를 청했습니다.
    그는 태자가 훗날 전 인도를 통일하여 덕으로써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시거나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걸으셔서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이 되실 것을 예언하며 자신은 이미 늙어 부처님의 출현을 뵐 수 없음에 슬퍼하며 눈물 흘렸습니다.
    태자가 태어난 지 7일째 되던 날 왕비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태자는 풍습에 따라 이모의 손에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반왕은 아들이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아 태자의 성 밖 출입을 막고 호화로운 궁궐에서만 머물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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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싯달타 태자는 왕궁의 풍요 속에 총명하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12세 되던 어느 봄날, 태자가 부왕과 함께 농경제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때 태자는 일에 지친 고단한 농부들의 모습, 채찍을 맞아 피를 흐리는 소의 모습 그리고 흙 속에 꿈틀대는 벌레를 쪼아먹는 새의 모습을 보게 되고 이렇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고 사는 것이 과연 세상의 올바른 질서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싯달타 태자는 염부나무 아래에서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깊은 명상에 들었습니다.
      이때 태자가 초선의 경지에 들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본 정반왕은 태자를 세상과 더욱 멀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으나 태자의 가슴 속에 자리한 고뇌는 깊어만 갔습니다.
      성년이 된 태자는 어느 날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몰래 성문 밖으로 유람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동문, 서문, 남문에서 각각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을 보게 되었고 생명을 가진 어떤 것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번민하던 태자는 다음날 북문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출가 수행중인 사문을 만나게 되었고 왕궁의 영화와 권세, 어떤 학문과 종교에서도 찾지 못했던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을 출가 수행자에게서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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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수행자를 만난 후 태자는 마침내 부왕에게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크게 놀란 정반왕은 온갖 말로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지만 태자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결국 부왕은 태자에게 왕위를 이을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세워 같은 석가족의 이웃 나라 콜리성의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태자의 결심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싯달타의 나이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아들 라훌라가 태어났고 태자는 모든 사람이 잠든 한밤중에 마부 찬타카를 깨워 애마인 칸타카를 타고 카필라 성벽을 뛰어넘어 동쪽을 향하여 달렸습니다.
        왕궁이 멀어지자 태자는 말과 마부를 돌려보내고 사냥꾼의 옷을 바꿔 입고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깎은 뒤 드디어 수행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때부터 싯달타 태자는 수행자 고타마라 불리었습니다.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 유명한 수도자들을 찾아 훌륭한 종교가들이 모여 있다는 인도 남쪽의 신흥 공업국가 마가다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알라라 칼라마라는 스승에게서 무소유처정이라는 수행을 배웠는데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해버렸고 다른 스승인 웃다카 라마풋타에게서 비상비비상처정이라는 수행을 배웠으나 그 경지 역시 곧 도달해 버렸습니다.
        수행자 고타마는 스승에게 배우는 것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그들 곁을 떠나 자신만의 수행을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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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 다른 수행자들이 하듯이 고행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의 고행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치열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반왕은 아들이 염려되어 다섯 사람을 보냈는데 이들도 고타마와 함께 수행자가 되어 고행을 하였습니다.
          고타마의 고행은 무서우리만큼 엄격한 것이어서 몸은 쇠약해져 죽음 직전의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6년에 걸친 극심한 고행에 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던 고타마는 고행이 바른 수행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행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행자 고타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네란자라강에 내려가 몸을 씻고 소를 몰고 지나가던 수자타라는 소녀가 바치는 우유죽을 마셨습니다.
          고타마와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들은 수행을 포기한 고타마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여 그를 비난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부처님은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왕위를 포기했고 행복과 안락이 보장된 가정을 포기했으며 모두가 믿었던 당시 최고의 사상과 최고의 고행자라는 명예도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세상 전부가 자신을 외면한다 하더라도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라면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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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수행자 고타마는 보리수 아래에서 목동 스바스티카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 위에 앉으셨습니다.
            “내 여기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수행본기경>

            부처님께서 굳은 결심을 하신 이 자리를 금강보좌라고 합니다.
            그때 마왕 파순이 수행자 고타마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자신의 세 딸을 보내 온갖 교태를 보내 유혹하게 하고 태풍ㆍ폭우를 보내고 창칼ㆍ불화살 돌을 던지고 악귀를 동원하여 수행을 방해했지만 고타마는 수미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으로도 수행을 막지 못한 마왕은 직접 고타마 앞에 나타나 전륜성왕의 지위로 그를 유혹하였으나 고타마는 마왕을 준엄이 나무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량없는 세월 동안 10바라밀을 행하며 선근공덕을 심어왔기 때문에 지금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하셨고 이를 땅을 지키는 지신이 증명했습니다.
            마왕은 이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마왕의 항복을 받은 수행자 고타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이때가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 성도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온갖 번뇌와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중생들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셨습니다. 부처님의 성불 이후 인간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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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녹원전법상(鹿苑傳法相)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깨달음의 내용이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습니다.
              이때 정법을 수호하는 신인 범천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하셨습니다.
              전법을 결심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전할 첫 대상으로 한 때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가셨습니다.
              고행을 그만 둔 부처님을 타락한 사문이라 비난했던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아는 체도 하지 않기로 했으나 점점 가까이 다가오시는 부처님께 자신도 모르게 절을 하고 자리를 권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해 첫 설법을 시작하였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다.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쾌락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괴롭히는 고행의 길이다. 수행자는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배워야 한다. 나는 이 중도를 깨달았으며, 그 깨달음에 의하여 열반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입니다.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로 비구의 시초입니다.
              얼마 후, 야사라는 청년과 그의 친구들이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찾으러 왔던 야사의 부모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재가의 신도로써 부처님께 귀의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 즉 불ㆍ법ㆍ승의 삼보를 갖춘 불교 교단이 비로소 성립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이것을 전도선언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로 가서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 삼형제에게 가르침을 설해 그들과 제자 1000여명을 함께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로 국왕인 빔비사라왕과 많은 백성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습니다.
              또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실 수 있는 사원을 마련해 주었는데, 바로 이것이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입니다.
              10대 제자인 사리불과 목련이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이 무렵입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부처님께서는 고향인 카필라국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설하시고, 역시 10대 제자인 아난과 라훌라, 아나율, 우팔리 등의 제자가 이때 출가하였습니다.
              십대 제자란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수승한 열 분의 제자로 지혜제일 사리불, 신통제일 목건련, 두타제일 마하가섭, 천안제일 아나율, 해공제일 수보리, 설법제일 부루나, 논의제일 가전연, 지계제일 우팔리, 밀행제일 라훌라, 다문제일 아난다 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열 분의 제자들은 불법을 널리 알리고 전수하는 것은 물론 교단의 유지와 발전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부처님 살아계실 당시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은 동쪽으로 갠지즈강 하류까지, 서쪽으로 아라비아해 연안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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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지 45년,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과 함께 하셨습니다.
                80세가 되시던 해 부처님께서는 생애 마지막 전법의 길을 떠나시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음력 2월 15일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들에게 의심나는 것이 있는가를 세 번이나 물으신 후 마지막으로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유명한 부처님의 열반유훈입니다.
                부처님의 생애는 누구든지 부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신 길입니다. 이제 부처님의 육신은 소멸하였지만 그 가르침은 어두운 밤에 밝은 등불처럼 중생의 앞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인류가 살아있는 한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영원히 살아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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